청소년 기후단체 등이 지금의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이 국가가 국민과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헌법의 원리를 침해한 것인지를 판단해달라며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소송의 판결이 지난해 8월 내려졌다. 헌재는 시행령이 2030년 이후의 감축 목표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 않아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지속적으로 담보할 장치가 없다는 이유로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26년 2월까지 새로운 기후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 판결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기후 정책의 책임성이 법률적으로도 다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였고 정부의 감축 목표 강화를 요구할 근거도 추가됐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헌재는 지금 시행령에 명기된 2030년까지 40% 감축이라는 목표는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기후운동 쪽에서는 이 목표도 근거와 의지가 부족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아쉬운 판결이었다.
헌법재판관들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의미 있는 판례를 남기려 노력한 것 같다. 다만 아쉬운 판결에 대한 이유는 헌재라는 기구의 성격에서도 찾아야 할 것이다. 헌재는 독립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연구기관이 아니라 지금의 헌법 조문과 현존하는 사례들을 근거로 청구인의 질문에 답하는 판결을 내리는 기관이다. 즉 소극적이고 보수적일 수밖에 없고 그 이상을 한다면 월권적 판결이 될 수도 있다. 다만 변화하는 사회를 반영해 기존 관행이나 상식에 반 발짝 정도는 앞서가는 의견을 모아주기를 바랄 수 있을 따름이다. 만약 헌법에 자연권이나 지금보다 적극적인 환경권 조항이 있고 더 많은 기후 데이터와 비교할 정책 사례가 있었다면 헌재에 더 전향적인 판결을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유엔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사법기관은 아니지만, 비슷한 평가를 해볼 수 있다. 1988년 설립된 IPCC는 기후변화를 다루는 세계의 과학자와 전문가들이 모인 기구다. 유엔의 주문에 따라 기후변화의 원인과 영향, 대응 방향을 제시하는 평가보고서를 몇년마다 발간하는 게 주된 임무다. 그런데 IPCC 역시 독자적 연구기관은 아니다. 평가보고서는 기후변화에 관해 발표된 수천 편의 논문을 꼼꼼히 검토해 합의할 수 있는 잠정적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다.
IPCC의 보고서는 그래서 실제 기후변화 진행에 비해 예측이 보수적이거나 대응이 뒤처진다는 비난을 듣곤 한다. 참여하는 나라들이 동의할 수 있는 범위로 최종 권고가 제한되는 탓에 적극적인 대책은 배제되는 일이 많다. 그럼에도, IPCC와 과학자들 역시 국제적 기후운동의 영향을 받으며, 주요 저자들에 여성과 제3세계 출신이 많아지면서 보고서의 입장도 점점 전향적으로 바뀌고 있다. 물론 그런 변화가 현실의 기후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건 여전히 문제다.
우리는 다시 헌재의 판결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너무도 중요한 판결이지만, 우리는 탄핵 판결 이후에도 더 크고 많은 일을 풀어가야 한다. 그리고 기후위기 대응은 이 탄핵 정국 속에 더욱 뒤로 밀려나고 있다. 기후위기 속에서 정부와 법률도 적응하고 변화해야 하며,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사실 기후위기 해결이란 헌재의 시간과 기후위기의 시간을 그래도 가깝게 일치시키는 것이기도 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