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이 찍혀야 나라가 산다...”위험한 외국 대신 핫한 중국 여행을”

2025-02-09

오후 5시쯤 붉은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넘어가자 중국 수도 베이징 중심에 자리한 자금성(紫禁城) 북문인 선우먼(神武門) 위로 불그스름한 노을빛이 내려앉았다. 징산(景山)공원완춘팅(萬春亭)에 오른 사람들이 선우먼에서 톈안먼(天安門)으로 이어지는 자금성 전경을 연신 카메라에 담았다.

음력 설인 지난달 29일 기자가 찾은 이곳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화살표 모양 팻말을 따라 인파에 밀려 한 바퀴 돌았다. 고작 43m 높이에 불과하지만 언덕을 보기 힘든 베이징 시내에선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고지(高地)다.

완춘팅 주변엔 베이징성중심점(北京城中心點)이라 쓴 금속 표지가 바닥에 박혀 있다. 남쪽을 바라보면 자금성과 톈안먼광장, 첸먼다제(前門大街)가 펼쳐진다. 동쪽으론 최대 상업지역 궈마오(國貿)의 마천루가, 서쪽엔 가장 오래된 왕실 정원 베이하이(北海) 공원이 있다. 융딩먼(永定門)에서 중구러우(钟鼓楼)로 이어진 길이 7.8㎞ '베이징 중축선(中軸線)'은 지난해 7월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하루 전 베이징을 찾은 40대 김은희 씨도 이날 10살 딸의 손을 잡고 이곳에 올랐다. 설 연휴 여행지를 고민하다 베이징을 골랐다. 역사와 문화를 배우길 좋아하는 딸을 위해서다. 생전 처음 중국을 방문한 김 씨는 “다양한 역사적 이야기를 들려줄 곳에 오고 싶었다”면서 “중국 다른 지역도 데려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무비자 조치 이후 한국인 발걸음 늘어

최근 김 씨처럼 중국을 방문하는 한국인이 늘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국 정부가 한국인에 대한 비자 면제 정책을 시작하면서다. 무비자로 중국을 찾을 수 있게 된 건 1992년 한중수교 이래 처음이다.

베이징을 대표하는 후퉁(胡同·옛 골목)인 난뤄구샹(南锣鼓巷)에서 만난 회사원 이정현(32) 씨도 마찬가지다. 남북 800m 길이에 동서로 16개의 골목이 뻗었고 수백 개에 이르는 상점과 식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 씨는 연인과 함께 ‘베이징의 인사동’으로 불리는 이곳에서 베이징식 자장면과 중국 전통 방식으로 만든 요구르트를 맛봤다. 그는 “중국에 오기 전 예상했던 것보다 거리가 깨끗하고 사람들이 친절해서 놀랐다”며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돌아다닐 때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평했다. 그 역시 중국 여행은 처음이다.

중국 여행에 대한 인기는 숫자로도 나타난다. 모두투어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일부터 올해 1월 16일까지 중국 여행 예약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104% 늘었다. 지난 설 연휴(1월 25∼29일)엔 지난해 설 연휴(1월 8∼12일)와 비교해 75%나 증가했다.

잦아진 한국인 발걸음에 변화도 생긴다. 중국 전역에 100개가 넘는 지점을 둔 양고기꼬치 전문점 헨주이첸(很久以前)은 최근 한국어 메뉴판을 마련했다. 소셜미디어에서 입소문을 타 한국인 손님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한 직원은 “우리 매장만 하루 20팀이 넘는 한국인이 방문한다”면서 “한국 소주도 여러 종류 준비했다”고 말했다.

"해외보다 안전한 중국 여행"

중국 관영 매체들은 연일 ‘중국 여행족’ 띄우기에 나선다. ‘금요일 퇴근 후 중국행(週五下班去中國)’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한 달만 7만 명이 넘는 한국인이 상하이를 방문했다며 일부 매체는 “한류 대신 후(滬·상하이 옛 지명)류”라는 주장까지 폈다.

한국뿐 아니다. 쓰촨(四川)성을 찾는 동남아시아 관광객도 조명했다. 국영 중국중앙방송(CC-TV)은 “동남아 지역과는 다른 계절을 경험할 수 있다”며 “관광객 수는 말레이시아, 태국, 미국, 베트남 순”이라고 보도했다.

소셜미디어에선 ‘핑티(平替·대체소비) 여행’이 유행이다. 동남아 대신 윈난의 멍스(芒市), 러시아 대신 네이멍구(內蒙古) 만저우리(滿洲里)를 가라는 식이다. 서울의 핑티는 한국 거리를 재현한 동북 옌지(延吉), 제주도의 핑티는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한 저장(浙江)성 타이저우(台州)다.

반면, 중국인 선호 여행지엔 일부러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운다는 눈초리도 있다. 여객기 사고가 연이어 일어난 한국과 중국인 납치 사건이 벌어진 태국이 대표적이다. 관영 매체들이 속보와 심층 보도를 이어가며 위험성을 부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해외여행에 안 좋은 인상을 심으려 한다는 느낌이 강하다”며 “최근 일본 여행에서 폐렴으로 숨진 대만 배우 쉬시위안 관련 뉴스에도 ‘일본에 가면 위험하다’는 식의 댓글이 달렸다”고 밝혔다.

한 30대 중국인 남성은 선호 여행지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해외여행을 가지 않아 여권을 어디에 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면서 “해외보단 중국 여행이 안전하고 좋지 않으냐”고 답했다.

발자국이 찍혀야 나라가 산다

‘중국 여행(中國遊)’ 띄우기 이면엔 결국 돈이 숨어있다. 경기 침체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가장 손쉽고도 확실한 카드이기 때문이다. 특히 빚더미에 앉은 지방정부엔 당장 ‘캐시카우’가 된다.

한국을 비롯해 38개국으로 확대한 무비자 조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중국 국가이민국에 따르면 작년 비자 면제로 중국에 건너온 외국인은 2000만 명을 넘겨 전년 대비 112% 급증했다. 관광을 앞세운 서비스 무역 규모도 전년보다 14.4% 증가해 7조 5천역 위안(약 1천 500조 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관광 수입을 넘어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간첩법 등으로 등 돌린 외국인의 투자 심리를 붙잡으려는 계산에서다. 박승찬(용인대 중국학과 교수) 중국경영연구소장은 “중국은 개방도가 높은 국가임을 알리려는 셈법이 깔렸다”며 “중국에 대한 반감을 줄여야 외국인 자본을 끌어들 일 수 있는 토대가 된다"고 짚었다.

다만, 자유로운 인터넷 접속을 막는 ‘만리 방화벽’과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결제 시스템은 여전히 넘어야 할 숙제다. 특히 코로나19를 거치며 중국 여행 관련 정보는 구글이나 네이버 등 해외 플랫폼보다는 중국 자체 앱에 주로 쌓이면서 외국인의 접근을 어렵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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