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직연금 상담 중 고객이 말했다. “65세에 완전히 은퇴하려 합니다.” 100세 시대에 너무 이르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웃으며 답했다. “이미 ‘가족세’를 받고 있습니다.”
두 자녀가 부모 생활비로 지원하는 매달 소득의 10%를 그는 “세금처럼 정기적으로 받는다”는 뜻에서 ‘가족세’라 부른다. 그는 이 이야기를 공개해도 좋다며, 심지어 내 강의에도 나와 증언하겠다고 했다.
비결을 물었다. 첫째, 자녀가 청소년일 때부터 부모의 노후 준비 상황을 꾸준히 공유했다. 등산이나 산책할 때 건강, 자산, 은퇴 계획을 이야기하며 자연스레 공감대가 쌓였다. 둘째, 부모가 가진 재산의 일부를 미리 증여하거나, 향후 증여 계획을 투명하게 밝혔다. 그는 부모가 물려준 시골 땅을 자녀에게 넘겼고, 재개발이 끝나면 아파트를 팔아 추가로 나눠줄 예정이다. 이런 신뢰와 소통이 자발적 ‘10%의 약속’을 가능하게 한 셈이다.

이 이야기를 주변에 전하자 반응이 엇갈렸다. “부모가 재산을 줬으니 가능한 일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자녀가 성장할 때까지 들어간 양육비와 교육비만 해도 이미 상당한 ‘선지급’이다. 다른 지인은 자녀의 결혼자금과 집까지 지원했지만, 대가로 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때 “안 주고, 안 받는 노후가 가장 안정적이다”라던 은퇴 전문가 지인도 결국 두 자녀의 유학비로 자산 대부분을 썼다. “강연 내용과 다르지 않으냐”고 묻자 그는 잠시 웃더니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자녀를 통해 이어가길 바란다고 했다. 자녀 지원은 부모라 불리는 인간의 본능이다. 다만 그 본능이 한쪽으로만 흐를 때 세대 간 균형은 깨진다.
예전에 부모 세대는 자녀의 자산 형성을 도왔고, 자녀 세대는 부모의 노후를 책임졌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이 고리가 끊어지면서 앞 세대는 외로워졌고, 뒤 세대는 집 한 채 마련하기조차 어려워졌다.
일본에서는 고령의 자녀가 더 고령인 부모로부터 상속받는 현상을 ‘노노상속(老老相續)’이라 부른다. 노노상속이 세대 간 부의 순환을 막아 ‘잃어버린 20년’의 한 원인이 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가족세’는 이런 단절을 메우는 작은 복원 실험이 될 수 있다. 제도적 연금이 약할수록 가족 단위의 협력이 더욱 중요하다. ‘10%의 약속’이 확산된다면 고령화로 흔들리는 공적 연금 체계를 보완할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연대가 생겨날지도 모른다. 세대가 서로를 돌보는 문화, 한국형 연금의 새로운 원형이 될 수 있다.
민주영 신영증권 연금사업부 이사 경영학(연금금융)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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