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때문에 첫 직업 접었지만, 완치 후 찾은 인생 2막…“눈 돌리면 새로운 직업 있어요.”

2025-02-07

직업의 세계는 넓고 다채롭다.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그동안 쌓아온 경력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전직의 기회를 찾을 수 있다. 마흔이란 이른 나이에 주된 일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영유아 교육 분야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특수교육실무사로 ‘인생 2막’을 연 이유경(46) 씨가 그 예다.

암 수술 후 어린이집 폐원…완치 후 인생 2막 고민

유치원과 어린이집 선생님이었던 이 씨는 2012년 서울의 한 어린이집을 인수했다. 원아는 0명. 금방 채울 수 있을 거라 자신했지만 신규 원아가 찾아오지 않아 의아해하던 이 씨에게 한 학부모가 “이 어린이집은 이 지역에서 평이 안 좋기로 유명한데, 알고 인수하신 거냐”고 귀띔했다.

이 씨는 어린이집을 살리기 위해 상담차 찾아오는 학부모와 아동을 살뜰히 챙기며 원아를 20명까지 늘렸다. 입소를 위해 대기까지 하는 지역 인기 어린이집으로 만들었지만 또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2019년 유방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그해 12월 수술을 받고 이어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어린이집을 운영하던 이 씨는 결국 2020년 2월 어린이집을 닫았다.

“출산 석 달 차에 인수한 어린이집이었어요. 정말 제 자식처럼 키웠어요. 폐원하기 쉽지 않았죠.”

이 씨는 지난해에 수술 5년 차가 되며 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이제 다시 사회로 나갈 준비가 됐다고 생각한 그는 서울시50플러스재단과 서울시 홈페이지 등을 어보며 일거리를 찾았다. 그러던 중 서울시50플러스재단 강서센터의 지역복지사업단을 통해 특수교육실무사라는 직업을 알게 됐다.

이 씨의 말을 빌리면 특수교육실무사는 특수교육 대상 아동이 ‘자신만의 속도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아동의 장애 유형과 수준 등에 따라 담당하는 아동의 수나 상세 업무 등에 차이가 있지만 특수교육실무사는 보통 아동의 학습 지원과 식사 지원, 신변 처리, 이동 지원 등을 담당한다.

“지역복지사업단에서 8개월간 특수교육 대상 아동의 학습지원을 했어요. 그런 직업이 있는지도 몰랐지만 아동을 돌본 경험이 있어서 어렵지 않았어요.”

유치원 정교사, 보육교사,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던 이 씨는 장애영유아 보육교사 자격증을 추가로 취득한 후 지난해 6월 서울시 교육 공무직에 도전, 17대 1의 경쟁을 뚫고 최종 합격했다. 지난해 9월부터는 강서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특수교육실무사로 일하고 있다.

“면접에서 장애 아동이 도전적 행동(자해, 폭력, 물기 등 자신이나 타인에게 피해가 될 수 있는 행동)을 했을 때 어떻게 대응할 건지에 관한 질문이 많았어요. 지역사회복지단에서 겪었던 경험을 녹여 답변하니 면접에 큰 도움이 됐어요. 막상 일터에 투입되니 아무 경험 없이 왔다면 힘들었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등교부터 하교까지…아동의 일상을 책임지는 실무사

이 씨가 돌보는 아동은 한 명이다. 경증의 아동이라면 특수교육실무사(이하 실무사) 한 명이 아동 여럿을 돌보기도 하지만 이 씨의 아동은 중증의 장애를 가져 등교부터 하교까지 이 씨가 전담해 돌본다.

“같이 과학 실험도 하고, 체육 시간에는 배드민턴도 쳐요. 원예 시간에는 자연물로 작품도 함께 만들죠. 아이가 학교에 도착한 순간부터 하교할 때까지 아이의 옆에 붙어서 모든 걸 도와준다고 보면 돼요.”

수업 중 ‘기체’처럼 아동이 이해하기 어려울 만한 개념이 나오면 ‘풍선 안에 들어가 있는 게 바로 기체야’하는 식으로 눈높이에 맞춰 설명도 해줘야 하는 등 과학과 체육,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만능 어른’이 돼야 한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해야만 할 수 있는 일

그저 옆에서 아이들을 지켜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동을 잘 돌보려면 실무사 스스로 체력적으로 튼튼해야 하고, 심리적으로 안정돼 있어야 한다. 아동이 도전적 행동을 할 때 실무사가 대처해야 하고, 위협 행동을 피하는 순발력도 필요하다. 교실 밖을 뛰쳐나가는 아동의 안전을 위해 뛰어가 붙잡아야 할 때도 있다.

“예전에 제가 돌봤던 아이는 ‘저는 긴바지를 입지 않아요. 선생님’이라는 말을 하루에 100번도 넘게 했어요. 그걸 매일매일 듣는 거죠. 하지만 늘 새로 들은 것처럼 반응해 줬어요. 어찌 보면 힘들 수 있지만 아이와 의사소통한다는 것 자체로 전 너무 재밌었어요.”

아이에게 눈을 떼지 않고, 하루 종일 긴장하다보니 퇴근할 때 면 녹초가 되기 일쑤다.

“어제 아무 일이 없었다고 오늘도 평온하게 지나갈 거라고 방심하면 절대 안 돼요. 아이가 도전적 행동을 하기 전에는 항상 전조 증상이 있어요. 이를 감지하기 위해서는 늘 아동을 주시하고 있어야 하죠. 제가 돌보는 아이는 크게 웃으면 화장실에 가야 해요. 그런데 가기 싫다고 거부하죠. 그러면 꾀를 내서 ‘선생님이 화장실 가고 싶은데 도와줘’하고 꼬드기는 거예요. 그렇게 아동을 설득하고, 살피며 긴장한 채로 하루를 지내고 나면 제 몸과 마음도 쉼이 필요해요. 이 일을 하려면 스트레스를 풀어낼 취미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이유예요.”

동료 실무사는 58세…중장년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

실무사는 방학 중 비근무 직종이다. 일정 기간을 쉬면서 고갈된 체력을 채울 수 있으니, 중장년에게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는 게 이 씨의 생각이다. 돌보는 아동이 하교하면 내 아이를 챙길 수 있어 워킹맘(대디)에게도 좋은 직종이라고. 의지만 있으면 인생 2막, 3막을 위해 공부할 여유도 있다.

“동료 실무사는 58세셔요. 예전에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함께 일하던 선생님에게 넘기고 싶었는데 5060이시라 회계와 서류 작업에 도저히 자신이 안 생긴다며 고사하셨죠. 그런데 실무사는 일지 작성도 없고, 서류 작업도 많지 않아 컴퓨터 사용이 어려운 중장년도 충분히 도전할 수 있는 일이에요.”

이 씨는 이 일을 하면서 동시 발표와 장애인 인식 개선 강사라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퇴근 후 틈틈이 쓴 동시는 현재 20편까지 모였다. 언젠가는 동시를 발표해 이 직업과 아이들과의 즐거운 일상을 알리고 싶다고.

“영유아 교육에서만 일하다가 눈을 돌려보니 미처 알지 못했던 다양한 직업이 있더군요. 도전하는 성격이 전혀 아니었는데 작은 도전이 선물이 돼 돌아오니 계속 하게 돼요. 더 넓은 세상에 도전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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