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던 위로의 유효기간은 끝났다. 적어도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그렇다.
시민들의 계층 이동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회 유동성 지수가 통계 측정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패자 부활 정도를 나타내는 회복탄력성 또한 바닥을 쳤다. 이런 상황에서 한 번의 실패,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평생을 옥죄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은 청년 사회의 구조로 공고히 자리 잡았다.
사회적 불안으로부터 해방된 거처를 찾아 헤매던 청년들에게 청년안심주택은 단연코 ‘최고의 선택지’였다. 입지가 좋아 대중교통 이용도 편리했고 임대료도 주변 시세보다 저렴했다. 서울시와 SH공사가 보증하는 ‘안심’ 브랜드까지 붙어 있었다. ‘알고도 당한다’는 전세사기 시대에 이보다 믿을 만한 주택은 없어 보였다. 실제로 평균 입주 경쟁률이 60대1까지 치솟으며 입주의 ‘좁은 문’만이 유일한 단점으로 꼽힐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공기가 달라졌다. 안심이라는 명패 뒤로 ‘부실’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사당동·잠실·도봉 인근 청년안심주택에서 임대사업자의 자금난, 관리 공백 문제가 잇따라 터졌다. 경매와 가압류가 이어졌고 그 안에서 청년 세입자들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지도 모르는 위기에 내몰렸다.
청년안심주택의 보증금은 입주 청년들의 전 재산이었다. 적어도 이곳은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에 청년들은 인생 출발을 위한 종잣돈을 걸었다. 그러나 그 믿음의 대가는 피눈물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위험사회’의 저자 울리히 벡은 일찍이 “불안의 시대에 신뢰를 보증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와 사회의 핵심 역할”이라 공언한 바 있다. 잘잘못을 가리고 책임 소재를 따지기 전에 다시 신뢰로, 청년의 눈물을 닦아줘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었다.
회복의 첫걸음을 뗀 것은 서울시의회였다. 정부와 서울시가 보증보험 가입 요건 완화를 두고 다툴 때, 의회가 사태의 시급성을 고려해 ‘서울시 안심주택 공급 지원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긴급 발의했다. 선순위·후순위를 가리지 않고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청년 임차인에게 서울시가 먼저 융자를 해주도록 했다. 서울시에 대한 신뢰를 담보로 맡긴 보증금인 만큼 서울시가 자체 구제 재원을 마련해 임차인에게 ‘이사 갈 보증금’을 빌려주도록 한 것이다.
물론 임대보증금 융자로 급한 불은 끌 수 있겠지만 ‘안심’이 빠진 청년안심주택의 구조적 부실까지 바꿀 수는 없었다. 현행법상 토지와 건물주의 소유자가 다른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은 임대보증금 보증보험 가입이 불가능하다. 필자는 조례와 함께 ‘보증보험 특례 신설 건의안’을 발의했고 동료 의원들은 찬성으로 힘을 보탰다.
조례가 통과하자 서울시도 곧바로 응답했다. 오세훈 시장은 ‘청년안심주택 임차인 보호 재구조 방안’을 통해 “선순위 임차인은 11월부터, 후순위 임차인은 12월부터 보증금을 선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의회가 제도로 길을 열자 서울시가 실행력이 담보된 대책으로 응답했다. 그렇게 ‘책임의 연대’가 구축됐다.
혹자는 조례가 법보다 가까이에서 시민을 지켜줄 수 있다는 사례가 됐다는 점이 반갑다고 했다. 신용은 그곳에 희망을 걸어도 되는지, 미래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물론 흠집 난 신뢰의 길을 복원하는 작업은 더디고 값비싸다. 그럼에도 그 길을 멈추지 않을 때 도시의 시간은 다시 앞으로 간다. 치열한 경쟁과 불안의 도시에서, 공공의 책임이 제자리를 찾는 순간 우리의 미래인 청년은 비로소 안심하고 내일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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