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공포, 기업이 조장…두려울수록 ‘AI 리터러시’ 높여야”

2025-10-13

AI 활용한 미술전 잇따라 여는 KAIST XD랩

“인공지능(AI)이 계속 폭발적으로 성장해 인류의 통제를 벗어나리라는 공포를 유발하는 사람들은 샘 올트먼(오픈AI CEO)처럼 대개 기업과 연관돼 있어요. 관련 상품을 팔아야 하니까요. 적어도 대형언어모델(LLM)은 성장세가 둔화됐다고 보는 전문가도 많습니다. 그래서 (한계 극복을 위해) 최근 에이전트 AI나 (로봇 몸을 더한) 피지컬 AI 이야기도 나오는 것이고요. 저는 성장 둔화가 인류에게 AI를 소화할 시간을 벌어주었다고 봅니다. 예술계에서도 AI에 대한 경탄과 두려움만 불러일으키는 작품들이 있는데 저희는 정반대로 AI를 앎으로써 두려움을 걷어내는, ‘AI 리터러시’ 향상을 위한 연구와 작업을 하고 있어요. AI로 인한 사회 양극화를 줄이기 위해서요.”

AI 내부 구조 보여주는 작품 등

난해한 기술 이해 돕자는 취지

AI, 과제 쪼개 문제 푸는 데 탁월

인간은 전체 과정 디렉팅해야

도덕 판단까지 맡길 수는 없어

편향성 등 AI 함정도 경계해야

카이스트(KAIST) 산업디자인학과 XD랩(경험디자인연구실)의 랩장(長)인 박사과정생 최정윤(25)씨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를 포함한 5명의 XD랩 학생들과 랩을 이끄는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강이연(43) 카이스트 지정 석좌교수를 지난달 30일 서울 한국국제교류재단(KF)에서 만났다. 이들은 재단이 주최하는 국제 미디어아트 기획전 ‘플랫폼: 보다 인간적인’(내년 2월 27일까지)에서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기술·예술 최전선의 청년들

대부분의 카이스트 연구실이 논문 생산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강 교수가 설립한 XD랩은 연구 기반 실천, 즉 작품 제작 등에 집중하며, 기술과 예술이 교차하는 최전선에 서 있다. 올해 상반기에는 대전 카이스트 미술관에서 챗GPT·제미나이 등 현재 AI에 사용되는 118개의 모델을 시각화해 이들 AI를 관람객이 직관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멀티-디바이스 웹 작업 ‘소타(SoTA)’를 선보였다. 관람객은 스크린에 시각화된 모습으로 뜬 각 AI 모델에 각자의 폰으로 접속해 인터랙션하며 AI 각각의 시스템 구조, 즉 아키텍처를 살필 수 있다.

“이번 작업을 위한 코딩을 할 때 AI를 많이 쓴 반면, AI가 생성한 이미지를 쓰는 일은 없었다”고 강 교수는 밝혔다. 최정윤씨는 “AI 모델의 개념 자체를 이해 못 했던 관람객들도 있었는데, 설문을 하니 ‘소타’ 관람을 통해 이해가 늘었고 AI에 대한 긍정적·부정적 감정이 모두 증가했다는 흥미로운 결과가 있었다”며 “예술에 소통의 힘이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현재 XD랩의 학생들은 모두 20대 초중반 나이, 즉 기성세대보다 AI에 친숙한 반면 AI에 직업을 위협당할 확률도 더 높은 세대에 속해 있다. 따라서 이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AI와 공존하는 삶’이 궁금해 두 시간에 걸쳐 대화를 나누었다. 작업에 AI를 많이 활용하느냐는 질문에, XD랩 학생들은 주로 시간 절약을 위해 보조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나 크게 의존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석사 2학기 차인 황인태씨는 “연구 주제로 데이터를 활용한 인터랙티브 아트에 관심이 있다”며 “이때 AI를 데이터 인풋(정보 수집 입력), 프로세싱, 아웃풋(결과물) 단계에서 모두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인풋에서는 AI의 편향으로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고, 아웃풋에서는 아티스트의 의도대로 컨트롤하기 어렵다. 그래서 데이터 프로세싱에서만 활용한다. 시간을 굉장히 절약할 수 있다”고 밝혔다. 황씨는 이번 KF 기획전에서 관람객이 가장 선호하는 날씨들로 형성된 ‘집단적 기후 안락 지대’와 실제 기후 데이터를 시각적으로 비교하는 인터랙티브 작업 ‘골디락스’를 선보이고 있다.

랩장 최씨와 황씨를 제외한 3명은 모두 학부생으로서 XD랩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KF 전시에서 인간과 동물의 관점을 역전시키는 몰입형 작품 ‘박물관’을 선보이고 있는 서민혁 인턴은 “대개 몰입형 작업은 (관람객을) 거대한 스크린으로 둘러싸 압도하는 형식인데 반대로 작은 스케일로 더 몰입이 가능한지 실험하고 있다”며 “시네마 4D(3D 모델링·애니메이션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작업을 한다. 사실 이 프로그램에 숙달되려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는데, 문제가 생겼을 때 AI에게 물어봐서 그 시간을 확 줄였다”고 설명했다.

생성형 AI에는 흥미 적어

강유안 인턴의 경우에는 “창작물을 통해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건축가, 가구 디자이너, 뮤지션들에게 영감을 받는다. 그래서 사운드를 만들고 이것이 가구·건축과 연결되어 특정 분위기를 형성하는 공간을 설계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수학과에서 왔기 때문에 머릿속 이미지를 구현하는 디자인 작업에 서툴러 AI의 도움을 받으려 시도를 많이 해봤는데, 그 결과물이 매끄럽기만 하고 섬세함이 떨어지니까 흥미가 사라졌다”며 “제가 말하는 섬세함은, 예를 들어, 건축에서 느껴지는 건축가의 예민함과 집착이 반영된 터치, 뮤지션들의 경우는 오히려 (목소리나 연주의) 개성적 흠결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인턴인 인도네시아 유학생 아만다 젤린은 애니메이션과 모션그래픽 작업을 주로 하는데 그 역시 “아티스트로서 AI를 사용하는 것에 부정적”이라며 “작업을 할 때 어떤 스토리를 전달하는 것보다 내가 느낀 것을 관람자도 느끼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 그런 느낌의 전달은 생성형 AI로 구현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물론 리서치나 문제 해결에는 쓰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랩장인 최정윤씨는 이렇게 정리했다. “AI는 분야가 특정되고 목표가 명확한 작업에 뛰어납니다. 복잡하고 모호한 목표를 쪼개고 또 쪼개서, 정의하기 쉽고 해결 가능한 과제들의 조합으로 만들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작업에 유용해요. 그런 AI의 특성을 환원주의적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 환원적인 과제들은 AI에게 맡기고 인간은 그걸 연결하고 전체를 디렉팅하는 걸 해야죠. 예를 들어 애니메이션도 그냥 생성형 AI에 ‘이런 애니를 만들어라’하고 맡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감독을 하며 특정 과정이나 세부 과제를 시키는 것이죠.”

그는 “현대사회와 직업의 세계도 환원주의적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AI 대부’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명예교수가 설명한 AI의 두 종류 위험 중 ‘사회적 위험’은 이미 실현되고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특화되고 목표 명확하고 데이터가 많이 쌓인 직업들, 바로 전문직들부터 없어질 것 같아요. 그런 작업은 AI에 의해 대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AI 시대에 적응하려면 사회 분위기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도 대치동 키드여서 어릴 때부터 잘게 쪼개진 문제를 잘 푸는 환원주의적 교육을 받았거든요. 앞으로는 그걸 벗어날 수 있는 사람들과 못 벗어나는 사람들로 사회적 재편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최씨는 환원주의의 대안으로, 복잡계적 사고를 추구해야 한다면서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리좀(Rhizome·식물의 수평으로 뻗는 뿌리줄기) 이론’을 예로 들었다. 세계와 지식을 하나의 뿌리와 중심 가지가 있는 수직적 위계적 구조의 나무로 보지 않고, 끝도 시작도 중심점도 없이 유동적으로 연결된 네트워크인 리좀으로 보자는 것이다.

최씨는 ‘소타’처럼 물리적 공간에서 폰과 스크린 등 각종 기기를 연결하고 상호작용하게 하는 멀티-디바이스 웹 작업을 통해서 “사람들이 복잡계를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하고 환원주의적 사고와 관점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래야 힌턴 교수가 경고한 또 하나의 위험인 ‘존재론적 위험’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AI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사라져

황인태씨는 AI의 ‘사회적 위험’으로 꼽히는 가짜뉴스, AI의 편향성 등이 ‘존재론적 위험’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말했다. “AI 대형언어모델은 기존 툴과 달라서 언어에 의해 사고 체계에 영향을 받는 인간에게 무의식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요. 또한 제 친구들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AI에게 연애 상담, 진로 상담을 하는데, 지금은 실용적인 차원이 크지만 점점 가치 판단까지 맡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그러면 AI는 각자의 입맛에 맞는 대답을 해줄 텐데, 그러면 사회 보편적인 도덕이 없는, 파편화된 각자만의 도덕관념과 이데올로기에서 사는 세상이 올까 좀 걱정돼요.”

그럼에도 XD랩 학생들은 전반적으로 “무엇이 와도 우리는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강 교수는 “나 또한 이 학생들과 함께 하면서 기술과 AI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고 (미디어아트) 작업 또한 밝아졌다는 평을 듣는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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