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중국이 관세 전쟁에서 평행선을 이어가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특유의 ‘거래의 기술’이 중국에서 역효과를 불렀다는 진단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17일 취임식 직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했다. 이 통화는 미·중 무역전쟁이 극단으로 치닫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조기 정상회담 가능성을 불 지폈다. 언론 인터뷰 등에서 “시진핑은 좋은 친구”라고 추켜세웠다. 참모에게 “취임 후 100일 이내 중국에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중국 역시 지난달까지 미국이 펜타닐을 명목으로 중국에 두 차례 10%씩 관세를 부과하면서도 일부 품목에만 보복 관세를 부과하는 등 절제된 반응을 보였다. 실무 관료들은 물밑에서 미국과 협상을 준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스티븐 데인스 상원의원(공화·몬태나)이 지난달 중국을 방문해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와 회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관세 문제 조기 종결을 위한 물밑 협상을 진행할수록 중국 측은 ‘서두르면 안 된다’는 결심을 굳힌 것으로 전해진다.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 스타일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 스타일은 상대를 혼란에 빠뜨리는 ‘최대의 압박’과 ‘갑작스러운 교섭’의 병행이 핵심이다. 종국에는 모든 의제를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최고 지도자 간의 협상으로 극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모양새를 선호한다. 결렬에 그쳤지만 2019년 북·미 정상회담이 단적이다.
중국 지도부가 중시하는 것은 안정과 예측 가능성이다. 풀기 쉬운 문제부터 하나씩 해결해나가며 신뢰가 쌓이고 결과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상회담을 연다. 조 바이든 전임 행정부 시절 미·중 화해 계기가 된 2023년 11월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도 군 대화 복원, 펜타닐, 기후변화, 인공지능(AI) 규범 마련 등에 대한 논의가 하부 단위에서 먼저 이뤄져 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왕이 중국공산당 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은 지난 2월 유엔 총회 참석차 뉴욕에 방문했을 때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 바이든 행정부 시절의 네트워크를 이어가기를 원했지만 불발됐다. 셰펑 주미 중국대사도 트럼프 행정부 실세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와 접촉을 시도했지만 불발됐다. 미국의 관심은 중국을 압박해 최고 지도자인 시 주석이 나서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국내의 한 중국 전문가는 “미국은 중국에 불가능한 일을 요구한 것”이라며 “중국 공산당 역시 여론의 눈치를 본다. 미국 압력에 굴복해 최고 지도자가 빈손 협상을 하는 일은 통치에 치명적”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일 발표한 ‘34%’의 관세는 협상을 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아니라 ‘미국 없는 세계화’ 결심을 부추겼다는 지적도 있다. ‘대중국 관세 60%’ 공약 달성을 협상 레버리지가 아니라 중국과의 ‘체계적 분리’ 선언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WSJ는 중국 고위 관료들과 정부 자문가들은 예상을 뛰어넘는 34%의 관세율을 보고 협상 무용론이 확산했다고 전했다.
중국은 지난 3일 보복 조치 발표에 이어 관세 전쟁에 여론이 겁을 먹지 않도록 관영매체를 통해 독려하고 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7일자 사설 1면에서 “미국의 관세 남용은 중국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하늘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당국이 적절한 시기에 금리 인하 등의 부양책을 단행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