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6일 중국 상하이 신국제엑스포 센터에서 '세미콘 차이나' 현장. 4년차 중국 스타트업 전시부스에 관람객들이 구름떼처럼 몰렸다. ‘화웨이의 비밀 장비기업’으로 알려진 사이캐리어(SiCarrier)의 전시관이다. 세미콘 차이나에 참석한 한국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제품 설명회가 시작되자 인파가 모여 사진과 영상을 찍느라 바빴다. 브로셔는 동이나 구할 수조차 없었다”라며 “해외 장비 의존도를 줄여줄 자국산 장비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했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26일부터 사흘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반도체 산업박람회인 세미콘 차이나에는 1400여개의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참가했다. 여의도 절반 규모의 거대한 전시장에는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 굴기’를 자랑하며 자립을 위해 몸부림치는 중국 업체들이 기술력을 뽐냈다.

화웨이 비밀 장비 첫 공개
특히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업체는 처음으로 장비들을 공개한 사이캐리어였다. 화웨이가 공식 발표한 적은 없지만, 외신과 업계에서는 2023년 화웨이가 7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을 활용해 자체 개발한 AI칩 기린9000S 제조에 사이캐리어의 장비가 사용됐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2021년 설립된 이 회사의 주요 주주는 선전 정부 투자 기관이다. 닛케이 아시아에 따르면 사이캐리어는 최근 몇 년간 외국 기업에서 엔지니어들을 공격적으로 영입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네덜란드 ASML, 미국의 램리서치와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 일본의 TEL 등 해외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주요 분야의 반도체 장비를 개발해 왔다. 사이캐리어의 장비로는 현재 5나노 칩의 생산 지원도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최대 장비업체인 나우라(북방화창)도 거대 규모 부스 마련했다. 나우라는 증착·식각 장비 업체로 미국의 기술 규제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반도체 장비 공급업체 순위에서 지난해 2단계 상승한 6위를 기록했다. ASML·AMAT·램리서치·도쿄일렉트론 4개 기업이 70% 가량을 차지하는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 유일하게 10위권 내에 입성한 중국 기업이다.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국영 반도체 장비업체인 상하이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SMEE)와 식각장비 생산하는 AMEC도 부스를 차리고 자사 신제품을 소개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올해 세계에서 반도체 장비에 가장 많은 금액(약 55조6950억 원)을 투자할 국가는 중국이라고 전망했다. 해마다 세미콘 차이나에 참가하는 반도체 업계관계자는 “중국이 내수만으로도 충분히 성장이 가능해 보일 만큼 규모면에서 늘 압도당하는 기분”이라며 “매년 큰 기업의 기술력은 발전하고, 작은 기업 수는 늘어나며 빠르게 성장하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김정웅 서플러스 글로벌 대표는 “국가 주도로 인재, 자금, 정책이 총력으로 지원되고 그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올해 세미콘 차이나에는 한미반도체·주성엔지니어링·세메스 등 한국의 소부장 업체들도 전시부스를 마련해 중국 시장 개척에 나섰다. 상하이 현지에 있는 통상업계 관계자는 “과거만해도 한국의 업체들이 새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중국 진출에 힘썼는데, 최근 몇 년사이에는 중국 기업들의 자립도가 너무 높아져서 한국 기업들이 새롭게 진출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급성장에 계속 때리는 미국
미국은 제재 수위를 더 높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 산업안전국(BIS)은 26일(현지시간) 중국 기업 50여곳을 블랙리스트에 추가했다. 이들 기업이 엔비디아, AMD 등으로부터 첨단 반도체 확보할 수 없도록 조치를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