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관세 배신’에 80년 동맹 균열… 각국 ‘우군’ 확보 사활 [세계는 지금]

2025-04-20

‘對트럼프 공동 전선’ 구축 박차

유럽, 제3국 등과 교역 시동

UAE 이어 동남아와 무역협상 움직임

멕시코 무역협정 25년 만에 강화키로

수년 ‘앙숙’ 中과도 7월 정상회담 계획

“美와 관계 무너지자 中과 재관계 시도”

‘관세 직격탄’ 中, 광폭 외교

시진핑, 베트남 등 찾아 반미연대 강조

CNN “고율 관세국 불안 달래기” 분석

남아공 등 신흥국과도 공동 대응 모색

習 “일방적 괴롭힘 행위에 함께 반대를”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방국을 가리지 않고 각종 청구서를 들이밀면서 국제 질서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내던진 ‘관세폭탄’과 ‘안보 장사’는 80여년 동맹 체제와 세계 무역 질서에 균열을 내고 있다. 미국의 ‘배신’에 각국은 미국 의존도를 줄이는 한편 우방국 결집에 나서며 대(對)트럼프 공동 전선을 구축하는 모양새다.

◆80년 동맹 균열에 제3국 교역 나선 유럽

“세계는 ‘글로벌 공공재’로 불리는 미국의 안보 우산과 달러를 기반으로 한 무역·금융 시스템을 제공 받고 있다. 지속적으로 이를 지원받기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힘을 합치고 정당한 몫을 지불해야 한다.”

스티븐 마이런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의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관을 여실히 보여준다. 마이런 의장은 지난 7일(현지시간) 워싱턴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가 주최한 대담에서 “우리의 군사적, 재정적 우위는 결코 당연하게 여겨질 수 없다”며 “부담 분담을 개선함으로써 우리는 회복력을 강화하고 향후 수십 년 동안 세계 안보 및 무역 시스템을 보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꺼내든 무차별적 관세 정책은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무역체제의 대가라는 의미다.

트럼프 행정부 관세의 주요 표적으로는 안보 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 한국, 일본 등이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람들이 겁을 먹었다”며 상호관세 부과를 90일 유예했지만 동맹국가들의 불안은 여전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3일 ‘트럼프의 대중 무역전쟁에 눈감는 동맹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유럽과 아시아의 파트너들이 미국과의 동맹 관계가 어느 정도로 유지되고 있는 건지 확신하지 못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장기적 적대국과 충실한 동맹을 구분하지 않고 엄청난 관세를 때렸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미국이 중국과 지정학적 패권을 놓고 장기전을 벌이려면 동맹과 파트너들의 지원이 필요하지만 이들은 어느 편도 들고 있지 않다”며 무역에 대한 양보와 안보 협력을 연계해 동맹들을 압박하는 방식이 동맹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돼온 대서양 동맹은 우크라이나전 종전 협상에서의 ‘유럽 패싱’에 이어 또 한 번 날아든 관세폭탄에 이미 미국과의 관계가 임계점에 달했다는 분위기다. 자체 핵우산 마련 등 안보 자강을 논의하던 유럽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나서는 한편 남미·중동·동남아 등 그동안 정체됐던 제3국과의 교역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최근 오랫동안 미뤄뒀던 아랍에미리트(UAE)와도 무역 협상을 시작했다. EU는 애초 1990년부터 걸프협력회의(GCC)와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일괄 체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협상하다 2008년 이를 중단했지만,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관세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우선 UAE와 논의를 재개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이다. EU는 또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후로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MERCOSUR)과 25년 만에 FTA 협상을 마무리하고, 멕시코와의 무역협정을 25년 만에 강화하기로 합의한데 이어 말레이시아·태국·필리핀·인도네시아 등과도 무역장벽을 낮추며 살길을 모색하고 있다.

유럽은 미국의 상호관세 직격탄을 맞은 중국과도 관계 개선에 나섰다. 중국을 “가장 큰 외교적 도전 과제”로 보고 ‘디리스킹(위험 제거)’을 선언했던 유럽이 ‘동병상련’ 처지가 된 중국과 손을 맞잡은 것이다. EU는 중국과 수년간 악화일로를 걸어온 만큼 “미국으로 인해 대중국 정책이 변하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지난해 10월 중국 정부가 자국 전기차 기업들에 불공정 보조금을 지급했다며 부과하기 시작한 고율 관세를 폐기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대중 강경파로 분류됐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역시 올해 들어 중국에 대한 언급에서 부드러운 어조를 취하고 있다. 최근 폰데어라이엔 위원장과 리창(李强) 중국 국무원 총리의 통화 후 EU가 발표한 공식 브리핑에서도 인권 문제 등 전통적인 비판 의제는 언급되지 않았다.

EU 고위급 인사들도 잇따라 중국을 찾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1일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를 베이징에서 접견한 뒤 “중국과 EU는 세계 주요 경제체로서 경제 글로벌화와 자유무역을 지지하고 있으며, 양측의 경제 규모는 전세계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이미 밀접한 상호 의존 관계”라며 “중국과 EU는 자유무역의 확고한 지지자로서 국제무역 환경을 공동으로 보호하고 일방적 괴롭힘을 함께 막아내야 한다”고 밝혔다. 수교 50주년을 맞은 EU와 중국은 지난해에 이어 7월에도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갖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EU 측이 자발적으로 베이징을 방문하려는 움직임은 미국과의 관계가 붕괴된 현 시점에서 중국과의 재관계 구축에 진지하게 나서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中 “일방적 괴롭힘 함께 반대하자”

최대 145%의 세율을 부과 받으며 관세 전쟁의 타깃이 된 중국은 미국의 의도와는 다르게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맞불 관세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우방국을 기반으로 반미 전선 구축을 시도하는 등 광폭 외교를 펼치는 중이다. 시 주석은 올해 첫 해외 순방지로 베트남,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등 동남아 3개국을 선택하며 우군 만들기에 나섰다. 지난 2일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각각 46%, 24%, 49%의 높은 상호관세 영수증을 받아든 국가들이다. 관세 전쟁 국면을 활용해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키워 미국에 대응할 협력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 무역 협상가 출신이자 싱가포르의 ISEAS-유소프 이삭 연구소 연구원인 스티브 올슨은 시 주석의 순방을 두고 “중국은 미국을 무역관계를 망치로 부수는 불량 국가로 그리면서, 자신들을 질서 있는 무역 시스템의 책임있는 리더로 자리매김하려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원티 성 비상임 연구원도 CNN에 시 주석의 이번 방문이 경제적으로는 전 세계에서 중국의 입지를 다변화할 방법을 찾는 것이고 외교 정책 측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오락가락하는 관세 정책으로 불안해하는 국가들을 중국 쪽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시 주석은 하노이 도착에 앞서 베트남 노동당 기관지 인민보 기고문에서 “무역전쟁과 관세전쟁에는 승자가 없고, 보호주의에는 출구가 없다”며 미국을 겨냥해 노골적인 비판 목소리를 냈다. 14일 또럼 베트남공산당 서기장을 만난 뒤에도 “중국과 베트남은 경제 세계화의 수혜자로, 전략적 의지를 높이고 일방적 괴롭힘 행위에 함께 반대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대미 공동 전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베트남은 가장 먼저 트럼프 대통령에게 협상 의사를 타진한 국가로, 중국산 제품을 ‘베트남산’으로 원산지 표시만 바꿔 미국으로 수출하는 불법 환적 단속을 강화하며 미국과의 협상에 애쓰고 있다.

앞서 왕원타오(王文濤) 상무부장도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상무장관, 20국(G20) 의장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무역산업부 장관 등 신흥국 장관들과 잇달아 화상 통화를 진행하며 미국의 일방적 관세 조치에 대한 공동 대응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이들 국가들은 미국, 중국 모두에 자국 무역관계가 크게 노출돼 있는 만큼 중국의 외교적 제안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동남아 국가들은 중국의 주요 제조업 생산기지이자 교역 상대인 동시에 미국을 거대 수출 대상으로 삼으며 해외투자와 안보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90일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 미국과 상호관세 협상을 마쳐야 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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