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쉐린 스타.
셰프의 궁극적 꿈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가져볼 만한 목표다.
조선팰리스 한식당 ‘이타닉 가든’, 레스케이프 호텔 양식당 ‘라망 시크레’는 모두 지난 2월 발표된 ‘미쉐린가이드 2025’에서 1스타를 받았다. 라망 시크레는 2021년부터, 이타닉 가든은 2023년부터 줄곧 1스타를 유지해오고 있다. 장르와 결이 다른 두 레스토랑을 이끄는 이는 손종원 셰프(41·사진)다. 2곳 이상의 레스토랑에서 동시에 별을 얻은, 국내 유일한 사례다. 지난달 열린 미식계의 또 다른 시상식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2025’에서 이타닉 가든은 25위를 차지했다. 50위 안에 든 한국 레스토랑 4곳 중 한 곳이다. 지난해 64위였던 순위가 껑충 뛰어올랐다. 2023년엔 프랑스 관광청이 선정하는 세계 미식 가이드 ‘라 리스트’에서 아시아 셰프로는 최초로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했다. 지난 9일 이타닉 가든에서 만난 그는 “한국 문화와 한식에 관해 세계적으로 관심이 커지면서 좋은 결과가 있었다”며 “함께하는 팀원들의 노력이 정말 컸다”고 말했다.
- 상복이 많은데, 굳이 순위를 매겨본다면 어떤가요.
“처음 미쉐린 스타를 받았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죠. 간절했던 만큼 그 감격이 컸어요. 이번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순위는 전혀 예상 밖이라 놀랐고요. 50위 안에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50등만 아니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 올해 미쉐린 결과에 아쉬움은 없던가요.
“이번 발표가 난 뒤 팀원들이 ‘자, 다음 발표일까지 364일 남았다’고 하더라고요. 더 좋은 성적을 기대했을 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는데, 다들 칼을 가는 모습을 보니 제가 머뭇거리거나 처져 있을 수 없더라고요. 제 신조가 ‘Evolve’(진화하다)예요. 안주하지 않고 더 나아가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상도 좋지만 요리하는 목표가 상은 아니니까요.”
- 결이 다른 2개의 레스토랑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한다는 게 가능한가요.
“오히려 장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만 할 때는 보여주고 싶은 부분을 다 소화하는 게 힘들어 복잡해지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콘셉트가 명확한 두 레스토랑에서는 각각 구체적인 방향성을 갖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어요. 한식의 특징이 무엇인지, 프렌치의 차별점은 무엇인지 더 정교하게 고민할 수 있으니까요.”
아침에 규칙적으로 운동(크로스핏)을 하는 것 외에 그는 대부분 시간을 레스토랑 주방에서 보낸다. 취미생활은 식재료를 찾아 시장이나 산지 발품에 나서는 것. 조희숙 셰프나 정관 스님 같은 ‘스승’들을 찾아가 배움을 청할 때도 많다. 틈날 때마다 책을 사는 것은 그가 누리는 소소한 재밋거리다. “어떻게 보면 일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제 삶의 일부나 마찬가지다 보니 일로 느껴지지는 않아요. 음식을 만드는 사람에겐 식재료가 가장 중요하거든요. 결국 현장에 가서 보고 듣고 확인하는 것밖에 없어요. 거기서 영감을 많이 얻죠.”
- 엄청 학구파신데요. 아니면 ‘너드’라 해야 할까요.
“제가 좀 너디(nerdy)해요. 덕후이기도 하고(웃음).”
분당에서 중학교를 마치고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고교 시절 내내 수학과 과학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그는 세계적인 명문 미국 로즈헐먼 공대에 입학했다. 공부만 하던 어느 날 찾아온 고민은 그를 흔들었다. 공부가 싫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좋아서 하는 사람은 못 따라갈 것 같았다. 이걸 계속하면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
- 요리가 운명처럼 찾아왔나요.
“어릴 때부터 요리하는 건 좋아했는데 처음부터 ‘이거다’ 한 건 아니었어요. 패션에도 관심이 많아 파슨스로 진로를 바꾸는 것도 잠시 고민했는데 우연히 뉴욕 요리학교 CIA에 들를 기회가 있었어요. 거기서 요리하는 학생들 모습을 보는데 너무나 가슴이 뛰면서 그 속의 일원이 되고 싶은 거예요. 요리를 하고 살면 평생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부모님 반대가 심했겠네요.
“나름 모범생으로 살았으니까요. 하지만 제 앞길에 대한 결정을 스스로 내려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나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무리 힘들어도 견디겠더라고요.”
-막상 해 보니 재미있던가요.
“내가 요리를 좋아하는구나 싶었어요. 주말엔 쉬거나 놀러가게 마련인데 뉴욕 레스토랑을 찾아다니며 무급으로 일했어요. 늦게 시작해서인지 뭐라도 더 하고 싶었고 그렇게 새로운 걸 배워 나가는 과정이 즐거웠어요.”

학업 중간에 인턴과정으로 일하게 된 곳은 샌프란시스코의 3스타 레스토랑 ‘베누’였다. 이 레스토랑은 안성재 셰프도 일했던 곳이다. 인턴을 마친 그에게 오너셰프 코리 리는 “계속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권했다. ‘돌아가서 마저 공부하고 학위를 따야 할 텐데’ 하던 그의 고민은 “나도 고등학교밖에 안 나왔다”는 리 셰프의 말을 듣고는 바로 정리됐다. 베누를 거쳐 COI, 퀸스 등 미국의 손꼽히는 레스토랑에서 고루 경험을 쌓았다. 2018년 새롭게 문을 연 레스케이프 호텔의 제안을 받고 귀국했다.
- 그때는 어떤 계획을 세웠나요.
“1, 2년 정도 열심히 해서 궤도에 올려놓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가벼운 생각으로 왔어요. 한국을 오래 떠나 있었던 터라 이참에 한국 음식도 많이 먹고 다시 공부해볼 기회로 삼으면 좋겠다는 정도였죠. 그런데 생각과 달랐어요. 막상 해보니 올인하지 않고는 안 되겠더라고요.”
- 어떻게 달랐나요.
“3스타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배웠지만 제가 3스타 셰프는 아닌 거잖아요. 오롯이 내가 책임져야 하는 공간에서 뭔가를 하려니 너무 형편없다는 자괴감이 들었어요. 오만했다는 반성도 많이 했고요. 누군가가 하고 있는 요리를 비슷하게 할 수는 있겠지만, 셰프로서 내 음식을 하지 못한다면 너무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거거든요. 초창기엔 밤잠 설치는 우울한 나날의 연속이었어요.”
- 어떻게 극복했나요.
“단순하고 반복된 삶으로 정리했어요. 일하고 운동하고 공부하고. 다른 것은 다 쳐냈어요. 규칙적인 삶에서 평안함이 얻어지더라고요. 궁중요리연구원을 비롯해 한식과 관련한 것을 배울 수 있는 곳들을 찾아 수업도 꾸준히 들었고요. 젊은 친구가 열심이라며 예쁘게 봐주신 덕분에 이리저리 고마운 인연들도 많이 만났지요.”
- 요즘도 뭘 배우시나요.
“폐백 음식요. 뭐가 되었건 여러 가지 바탕이 있으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그것을 응용한 무언가가 나오거든요.”
- 그런 노력 때문일까요. 이타닉 가든도 오픈 때와 비교하면 ‘한식’의 정체성이 더 강해진 것 같아요.
“특히 이번 시즌부터는 확실한 ‘한식’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간의 고민과 연구가 더 정교해지고 구체화한 거죠. 지난 시즌만 해도 코다리 같은 재료는 못 썼을 텐데 이젠 정통 한식 재료를 과감하게 쓰고 있습니다.”
- 세계적으로 한식에 관심이 많은데 특히 주목할 만한 게 뭐라고 보시나요.
“나물이죠. 이렇게 많은 나물을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해 먹는 문화는 우리나라밖에 없거든요. 저도 그동안은 삶아서 양념에 버무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나물마다 가진 장점을 끝까지 끌어올리는 조희숙 선생님의 가르침을 보면서 정말 새롭고 놀라웠어요. 선생님 같은 분은 몸에 배어 있지만 제 입장에선 아직도 배우고 경험해봐야 할 것들이거든요. 한국에서만 쓰는 들기름 같은 재료도 유니크하고 특별하죠. 이런 것들을 더 활용하고 알리는 것이 평생 해야 할 과제다 싶어요.”
- 공대 공부가 요리에 도움이 되나요.
“이과적 사고가 도움이 된다고 봐요. 요리는 마법이 아니고 과학이거든요. 감으로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치열한 고민과 노력, 계산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이번 시즌에 내놓은 삼계탕도 그런 계산에 의해 나온 거예요. 닭과 밥을 비롯해 여러 재료가 어떤 식감과 맛을 내야 하는지 그 최종 도달점의 설계도를 먼저 그리죠. 그리고 그 맛을 구현하기 위한 과제를 수행하는 전 과정이 요리입니다.”

그는 올 초부터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하면서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셰프테이너 전성시대가 십수년간 이어졌던 것을 생각하면 방송 출연이 뒤늦은 감이 있다. 오랫동안 섭외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말주변도 없고 재미도 없는 사람”이라며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예능 캐릭터로 소비되는 것도 마음에 내키진 않았으나 <흑백요리사>가 침체된 외식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주는 것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 <냉장고를 부탁해>를 선택한 이유는요.
“외식업 중에서도 파인다이닝은 극히 일부분이잖아요. 그래서 파인다이닝 문화가 무엇인지, 어떻게 다른 건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 반응이 좋아서 섭외 요청이 더 쇄도할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한데, 정말 힘들어서 더는 못하겠어요(웃음). 얼마 전 토크 콘서트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끝나고 나서 같이 사진 찍자고 줄 서 계신 분들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고맙기도 하고 적응도 안 되고 그런 거죠. 하지만 저희 엄마 친구분들이 ‘너희 아들 성공했다며?’라 전화하신대요. 태어나 처음으로 효도하는 것 같아서 그건 좀 뿌듯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