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2/10/278be086-1165-45ee-86e2-bb11a9105ed9.jpg)
건물 한가운데 큰 회의실에 자연 채광이 쏟아진다. 엄숙한 의사당 유리 천장 위로 관광객들이 걸어 다니며 회의 광경을 내려다본다. 쾰른 대성당에 이어 독일에서 두 번째로 방문객이 많아 관광 명소가 된 베를린의 독일연방 의사당의 모습이다.
1871년 최초로 독일을 통일한 제2제국은 23년 후에야 제국의회 의사당을 완공했다. 현상설계에서 당선한 파울 발로트의 안은 두 개의 중정을 가진 신고전주의 풍의 당당한 석조 건물이었다. 1933년 한 공산주의자의 방화로 의사당 내부는 전소했다. 이 사건은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나치 독일로 가는 끔찍한 계기였다. 나치당은 공산주의 토벌을 빌미로 일종의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가주의를 선동하며 파시즘 체제로 치달았다. 방화의 큰 그림을 히틀러가 그렸다는 음모론이 여전히 설득력을 가진 이유다.
![](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2/10/ca92544a-c2dd-4542-ae53-fbfeffa9d1e9.jpg)
의사당은 폐허가 되었고 2차대전 때 연합군의 표적 공격으로 더욱 파괴되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재통일한 독일연방은 베를린의 이 유적을 개조해, 1999년 연방의회 의사당을 열었다. 영국의 노먼 포스터가 개조 설계를 맡아 기존 외벽만 남기고 내부는 첨단의 공간으로 재구성했다. 독일의 거장 건축가, 고트프리트 뵘이 참여하면서 중앙 회의실 상부에 거대한 유리 돔을 얹었다. 돔 내부는 5겹 나선형 경사로를 설치해 방문객들의 공중 산책로가 되었다. 유리 바닥 아래로 의사당이 내려 보이고, 거대한 거울 추를 내려뜨려 회의실 안에 채광과 환기를 제공했다.
의회를 파괴해 나치의 독재가 가능했다면, 의사당을 재건해 통일을 기념하고 민주주의를 완성했다. 유리 돔은 의사 과정을 투명케 하고, 시민에게 접근권을 주었으며, 자연 채광과 환기 등 생태 가치를 실현한 건축적 장치다. 방문객들은 나선 산책로를 오르며 360도로 전개된 통일 베를린의 도시 풍경을 만끽한다. 밤에는 내부 조명이 도시로 발산되어 마치 타오르는 횃불처럼 되어 강렬하게 외친다. “독일 국민에게, 민주주의여 만세!”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