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스그룹 은행 '뱅크런'…"중국인들 도주하고 있다" [캄보디아 르포]

17일 오후 캄보디아 칸달주(州)에 속한 국경 마을 츠레이톰(Chrey Thum)의 2차선 도로는 덤프 트럭 행렬이 일으키는 흙먼지가 시야를 가렸다. 자욱한 먼지가 걷히자 규모를 가늠할 수 없는 초대형 범죄 단지 ‘진윤 웬치(园区)’가 모습을 드러냈다.

‘프린스 그룹’이 원래 ‘골든 포춘 과학기술공원’이라는 명칭으로 조성한 이 웬치는 현재 ‘골든 포춘 리조트 월드’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프린스 그룹은 캄보디아 납치·감금 범죄 배후로 지목된 중국계 캄보디아인 천즈(陳志·38) 회장이 창립한 대기업이다.

대대적 단속으로 폐쇄된 프놈펜, 시아누크빌 웬치와 달리 진윤 웬치는 여전히 운영중이었다. 무장 경비원 5명이 지키는 웬치 입구 끝에 있는 4층 건물은 쇠창살로 모든 베란다와 창문이 막혀 있었다.

웬치 입구부터 베트남 국경까지 연결된 거리 2㎞ 구간은 중국어 간판이 즐비했고, 문신을 새기고 웃통을 벗은 중국인들이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영어로 ‘츠레이톰 차이나타운’이라는 깃발이 꽂힌 황무지에선 인부들이 부지런히 건축 자재를 날랐다. 웬치 앞에서 식료품을 파는 한 캄보디아인은 “(웬치) 안에서 도박, 마약, 온라인 스캠을 하는 걸 알고 있다”며 “웬치가 사라지면 수많은 캄보디아인이 일자리를 잃을 정도”라고 말했다.

프린스 그룹을 초국적 범죄 집단으로 규정한 미국과 영국은 지난 14일 진윤 웬치를 온라인 스캠(사기) 작업장 중 하나라고 발표했다. 미국은 프린스그룹이 캄보디아에 최소 10개의 스캠 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가짜 구인 광고로 외국인을 유인해 온라인 사기를 강요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양국은 프린스 그룹의 자국 내 자산을 동결하고, 천즈가 소유한 약 150만달러(약 21조원)의 비트코인 12만7271개도 몰수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미국의 전방위 제재가 발표되고, 한국에서도 관심이 집중되면서 이날 웬치 주변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한 덤프 트럭은 중국인, 동남아인으로 추정되는 남성 20여 명을 뒤에 실은 채 이동했다. 텔레그램의 한 동남아 범죄 전문 채널에선 “츠레이톰에서 중국인들이 도주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짧은 영상이 올라오기도 했다.

미 재무부가 프린스 그룹 등의 자금 세탁 통로로 지목하며 금융 제재를 가한 캄보디아 ‘후이원(Huione) 은행’도 북새통을 이뤘다. 전날 오전 프놈펜 후이원 은행 지점 간판은 철거돼 있었고, 자금을 인출하려는 중국인 20여 명이 ‘오픈 런’을 했다. 기자가 “가상자산을 달러로 바꿀 수 있냐”라고 직원에게 묻자 “후이원 계좌를 개설해야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프린스 그룹이 국내에서 활동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프린스 그룹은 ‘킹스맨 부동산 그룹’이라고 이름을 바꿔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의 한 빌딩에서 사무실을 운영했다고 한다.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이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해 보고, 국가수사본부에서 수사 착수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인간 통장 가장 흔한 웬치 유입 경로”

정부 합동 대응팀이 전날 방문한 캄보디아 다케오주(州) 태자(太子) 단지도 프린스 그룹이 운영하던 곳이다. 건물 6개 동에서 숙소로 쓰는 3개 층마다 방이 약 30개씩 있는 것으로 보아 3000명이 넘는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단지는 안에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구조였다. 건물 1층 상가에는 후난성(省) 등 지역별 식당, 전자기기 판매점, 미용실, 네일 샵, 여행사뿐만 아니라 병원도 입점해 있었다. 한 상점은 “각종 해외 플랫폼 맞춤 제작, 주문 조작, USDT(코인) 탈취 등 다양한 작업 접수한다”고 광고했다.

여기서 일회용 비밀번호(OTP)를 갖고 있는 한국 세탁책이 돈을 들고 나르거나, 본인의 욕심에 돈을 빼돌리는 ‘사고’가 발생하면 그때부터 폭행·감금이 시작된다고 한다. 20여명을 웬치해서 구출한 교민 장모씨는 “인생 막다른 곳에 몰렸다가 거금을 벌 수 있단 생각에 웬치로 오는 이들이 많다”며 “11일 동안 128억원이 입금된 경우도 봤는데, 큰돈을 보면 눈이 돌아간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세탁책으로 활동했던 한 조직원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우리 입장에서도 어렵게 구한 사람을 건드려서 좋을 게 없다”면서 “보통 사람은 이해되지 않고 실제 옳지도 않은 방법이지만, 사고가 나면 응분의 대가를 치르는 게 이 바닥의 상식이고 생리”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캄보디아에 구금된 한국인 60여 명 전원을 자정쯤 전세기에 태워 송환한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송환자 대부분이 한국 정부에서 체포영장이 발부된, 범죄 혐의가 있는 피의자 신분이며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의 적색수배가 내려진 사람도 있다”며 “제가 알기로는 모두가 체포 대상”이라고 했다.

츠레이톰(캄보디아)=이영근 기자, 임성빈ㆍ김정재 기사 lee.youngke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