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A 칼럼] 철도 운영 통합 이유가 민영화 반대? 통합 근거 납득할만 해야

2025-12-17

[서울=뉴스핌] 이동훈 선임기자 = 구 소련의 반체제 문학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소련에서 추방돼 기차를 타고 서유럽으로 가고 있을 때다. 솔제니친은 목적지인 당시 서독에 도착했는지 차창 밖을 내다보면 확인했다. 동독까지는 차창 밖이 황량했지만 어느새 갑자기 광고판이 우후죽순 나왔다. 그때 자본주의 국가 서독에 도착한 것을 솔제니친은 알게 됐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갑자기 철도 경쟁체제 해체가 핫이슈가 됐다. 정권 출범 직후부터 통합을 공식화하더니 불과 반년 만에 통합 로드맵이 나왔다. 2년 이내 통합 계획이 나오더니 아예 1년 안에 통합하겠다는 로드맵이 나온 상황이다.

철도청 시대부터 국유 철도를 독점 운영하던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철도 운영 노하우는 '세계급'이다. 그런 코레일이 철도 운영을 맡게 되면 나쁠 것은 없다. 철도 특히 국유철도는 교통편의도 편의지만 국민 교통복지를 달성하는 교통수단인 만큼 정부 기관이 맡아 운영하는 것은 무조건은 아니더라도 필요성이 매우 높은 부분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나라 철도는 조선시대 말 도입됐다. 1894년 의정부 공무아문 철도국이 수립된 이후 약 100년을 넘는 시간 동안 철도는 '철도청'과 그 전신인 국가기관이 운영했고 야권의 엄청난 반발 속에 탄생한 고속철도가 운영된 2004년부터는 현재의 철도공사가 설립돼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2013년 고속철도 건설 만큼 커다란 논란을 겪으며 현재의 철도경쟁체제가 확립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대선 때부터 철도 운영기관 통합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는 앞서 민주당 정권인 문재인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철도경쟁체제가 잘못됐다면 물론 갈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 당시 도입하려던 철도 민영화는 전국민적 반발 속에 사라졌다. 국부(國富)를 해외에 팔려고 한다는 반대 논리에 맞서지 못하며 철도 서비스의 양적 확대를 위해 검토됐던 철도민영화는 자취를 감췄고 대신 탄생한 것이 코레일 지분 51%인 공기업 현 에스알(SR)이다.

그런데 철도 통합 로드맵이 나온 지금까지 철도경쟁체제의 문제점은 일절 거론되지 않고 있다. 대신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는 15년전 사라졌던 '철도 민영화' 논란이 다시 나왔다. 이 대통령은 국토부 업무보고에서 "(코레일·SR) 통합은 잘되고 있나? 빨리 좀 하라"며 "그거 민간에 매각하려고 분리했던 것 아니냐. 자꾸 알토란 같은 걸 떼 가지고 민간에 팔아먹으려고 그러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철도 민영화를 막기 위해 철도통합을 해야한다는 해묵은 논리가 철도기관 통합의 주요 이슈가 된 것이다.

즉 이 대통령이 인식하고 있는 철도독점 운영의 이유는 민영화 방지인 셈이다. 경쟁체제의 폐해가 심각해서가 아니고 철도 통합으로 국민 편익이 증대돼서도 아니다. 15년 전 잠시 나왔다 사라진 민영화 논리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철도경쟁체제는 이명박 정부 때 수립돼 박근혜 정부 때 완성됐지만 그동안 민주당 정권인 문재인 정부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에스알은 공기업으로 지정된다. 치열했던 민영화 논란 속에 겨우 탄생한 에스알을 그것도 공기업을 민간에 매각한다. 이런 것이 대통령 한 사람의 의지 만으로 가능할까? 당시 현 이재명 정부처럼 의회를 장악했던 이명박 정부도 철도 민영화를 도입하지 못했다. 그리고 12년간 에스알 지분을 해외에 매각하겠다는 시도가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심지어 경쟁체제 도입 이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철도 통합을 주장한 철도노조도 통합을 해야하는 이유를 KTX 요금 인하 효과와 고속열차 좌석 확대, 운영수익 증가와 같은 국민 철도 편의 제고를 들었지 민영화 반대를 전면으로 내세우진 않고 있다. 오히려 민영화 반대가 철도 통합의 운영의 이유가 됐다면 정부가 통합 필요성에 대해 심사숙고 했는지 자체가 심히 의심스럽다.

12년간 운영됐던 철도경쟁체제는 반드시 유지해야할 필요성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철도 운영이 코레일의 독점으로 이뤄져야할 필요성도 충분치 못하다. 우리나라 고속철도 운임은 유럽 등에 비해 월등히 싸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속철도가 교통 복지는 아니다. 교통복지는 지금도 코레일이 독점으로 운영하고 있는 무궁화호와 수도권 광역철도다. 시장 경제국가에서 경쟁은 자연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더구나 통합돼야할 이유가 지금은 기억 조차 희미한 철도 민영화 반대라면 더욱 그렇다.

철도 통합에 대한 반대 측 의사는 아예 들을 생각도 않고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처리하는 사례가 남는 것도 곤란하다. 만약 다음 정권의 대통령이 다시 철도 경쟁체제 도입이 필요하다며 재건하려한다면 어쩔 것인가? 그때도 정부는 출범 몇달 만에 로드맵을 만들어내고 반대측 의사도 듣지도 않은 채 1년 만에 분리시키는 속전속결을 다시 할 것인가? 그렇다면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철도 운영기관이 통합되고 분리되는 일이 반복될 것인가. 이같은 일을 막기 위해 국민적 합의를 모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절차다.

철도 경쟁체제가 도입되기까지는 많은 반대를 겪으며 5년의 시간이 걸렸다. 철도 통합을 다시하려면 최소한 그 시간의 절반인 2~3년은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할 것이다. 철도 통합과 분리가 정치 보복처럼 반복될 수 있는 선례가 돼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 개혁안도 국민 아이디어 공모전 등을 열며 충분한 시간을 갖고 처리하고 있다. 철도운영기관 통합은 오히려 LH 개혁보다 더 많은 영향을 국민에게 준다. 충분히 숙고하고 필요성을 홍보한 뒤 추진해도 늦지 않다.

donglee@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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