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출범한 노태우정부는 남북 관계 개선에 역점을 뒀다. 소련(현 러시아)을 비롯한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과의 수교(修交)로 대표되는 이른바 ‘북방정책’의 일환이었다. 1990년 들어 정부 내에 대북 정책 컨트롤타워를 맡을 부총리를 신설하고 통일원(현 통일부) 장관이 겸직하도록 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그러자 외무부(현 외교부)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왕 외교·안보 분야를 총괄할 부총리를 둔다면 당연히 외무장관에게 이를 맡겨야 한다는 논리를 들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1990년 12월 개각을 단행하며 당시 최호중 외무장관을 승진시켜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에 기용했다. 노 대통령의 묘안 덕분에 통일원은 명분을, 외무부는 실리를 각각 챙겼다.

국제통화기금(IMF) 개입을 초래한 외환 위기 속에 출범한 김대중(DJ)정부는 예산 등 비용 절감이 급선무였다. 통일원을 ‘통일부’로 이름을 바꾸고 급도 부총리에서 그냥 장관으로 낮췄다. 다만 진보 성향의 DJ정부와 뒤를 이은 노무현정부를 거치면서 통일부 위상은 전보다 커졌다. DJ는 물론 노무현 대통령도 임기 중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2011년 사망)과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8년 보수 성향의 이명박(MB)정부가 들어서며 통일부는 존폐 위기를 맞는다. MB는 통일부를 외교통상부(현 외교부)와 합치고 싶어했다. 하지만 ‘통일을 포기하자는 것이냐’는 반발이 워낙 거셌다. 보수 진영에서도 부정적 여론이 커지자 MB는 통일부 존치로 돌아섰다.
그 시절 통일부의 옹색한 처지를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원래 정부서울청사 본관에 있던 통일부는 MB정부 출범과 동시에 옆 건물인 별관으로 이사했다. 당시 별관은 외교부가 사용해 ‘외교부 청사’의 이미지가 강했다. 통일부 사람들은 “마치 통일부가 외교부에 통폐합된 것 같은 모양새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언론은 “통일부가 외교부 청사에서 ‘더부살이’를 하게 됐다”는 식의 보도를 쏟아냈다. 중앙 부처 공무원들 중에서도 유별나게 엘리트 의식이 강한 외교관들과 한 건물을 쓰기가 영 불편했던 걸까. 통일부는 2009년 12월 정부서울청사 본관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이를 두고 ‘통일부가 외교부 등쌀에 못 견딘 결과’라는 식의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이재명정부 들어 외교부·통일부 관계가 심상치 않다. 한·미 간에 대북 정책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누가 한국 정부를 대표할 것인지를 놓고 다투는 양상이다. 외교부는 ‘미국 국무부가 대화 파트너인 만큼 외교부의 주도가 당연하다’라는 입장이다. 반면 통일부는 ‘북한 관련 전문성을 갖추고 남북 대화 노하우도 풍부한 통일부의 관여가 핵심’이란 논리를 펴는 듯하다. 급기야 16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 후속 조치 관련 협의는 통일부 없이 외교부 및 국방부 관계자들만 미국 측과 얼굴을 마주하는 이례적 상황이 연출됐다. 외국을 상대하려면 우리부터 먼저 ‘원팀’(one team)이 돼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다가 또 ‘통일장관을 부총리로 격상시켜야 한다’라는 말이 나올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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