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집, 키보드, TM…120억 로맨스스캠, 캄보디아發 '사기공장'

2025-10-20

캄보디아를 거점으로 120억원대 '로맨스 스캠(연애 빙자 사기)'을 벌인 조직은 현지 여러 곳에 본부와 지점을 두고, 관리·콜센터·자금세탁 등 기능별로 세분화한 기업형 '사기 공장'인 것으로 파악됐다. 조직은 프놈펜 도심 본부에서 인력을 모집하고, 프놈펜 남쪽 외곽인 보레이에 콜센터를, 서쪽 외곽인 태자단지에 자금세탁 거점을 두는 등 범행을 분업화했다.

20일 울산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에 따르면 로맨스 스캠 조직의 운영은 치밀했다. 총책인 한국인 부부를 정점으로, 수십 명의 조직원이 역할별로 움직이며 '사기 공장'을 돌렸다. 조직원들은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건물 여러 채를 빌려 본부를 꾸렸다. 그 아래에 관리팀과 수행팀 등 8개 세부 조직을 뒀다.

관리총책팀은 범죄기획과 직원교육을, 인사팀은 조직원 모집·관리를, 특수팀은 가짜 투자전문가 강의 영상 제작을, 화력팀은 유튜브 댓글과 조회수 조작을 맡았다.

여성 조직원이 다수 포함된 TM팀은 딥페이크 영상으로 피해자들과 영상통화를, 채팅 담당으로 '키보드'로 불린 채터팀은 '연인' 행세로 피해자를 속였다. 통장을 의미하는 '장집'팀은 세탁용 통장을 모집했다. 자금세탁팀은 범죄 수익을 대포통장과 가상화폐로 환전했다.

이들은 숙식이 가능한 도심 본부 건물 외에도 '분점'을 운영했다. 자금세탁팀은 태자단지에, 콜센터는 보레이에, 모집팀은 프놈펜 중심가에 각각 사무실을 두고 활동했다고 한다.

모집책들은 "캄보디아에 가면 큰돈을 번다"며 국내 20~30대 청년을 포섭했다. 현지에 도착한 이들은 여권을 빼앗긴 채 콜센터 상담원 등으로 교육받았다. 범행에는 대포폰이 동원됐다.

조직 운영의 배후에는 중국인 투자자가 있는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진'으로 불리는 한 중국인이 건물 임차비 등을 대고, 수익은 '투자금 회수' 형식으로 챙긴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경찰에 체포된 조직원은 "중국인 '진'을 직접 봤다"고도 진술했다.

범죄 수익금 세탁엔 국내 조직폭력배가 가담했다. 이들은 한국과 캄보디아를 오가며 범죄 자금을 가상화폐로 바꾸고, 10%의 수수료를 챙겼다고 한다.

로맨스 스캠 조직은 경찰에 검거되면 말할 진술까지 교육했다고 한다. 울산경찰청 한 간부는 "조직원들이 검거에 대비해 서로 가명을 쓰고 '잡히면 강압에 의한 범행이었다. 해외 취업 사기였다고 진술하면 풀려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사전에 교육받았다는 일관된 진술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부터 채팅앱을 통해 무작위로 한국인들에게 접근했다. 딥페이크 기술로 만든 '가상의 연인'이 매일 대화를 이어가며 친밀감을 쌓았고, 일정 시점이 되면 "투자 공부를 함께 하자"며 유튜브 채널과 투자 앱으로 연결했다. MBTI, 직업, 가족관계, 취미까지 세밀하게 설정된 캐릭터를 내세워 신뢰를 얻고 투자를 유도했다. 유튜브 영상에는 공범들이 '이 강의로 수익 났어요' 등의 댓글을 달아 신뢰를 조작했다.

피해자들은 존재하지 않는 투자 플랫폼에 돈을 입금했고, 이후 연락이 끊겼다. 피해자는 주부·장애인·노인 등 100여명으로, 1인당 피해액은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8억여원에 달했다.

울산경찰청은 지난해 3월부터 올 초까지 120억원대의 로맨스 스캠을 저지른 혐의(범죄단체조직죄와 특경법 사기 등)로 총책 A씨 부부를 포함해 83명을 입건했다. 현재까지 56명이 검거됐고, 이중 36명이 구속됐다. 20명은 불구속 상태로 송치됐으며, 나머지 27명은 여전히 미검 상태다. 14명은 인터폴 적색수배(Red Notice), 13명은 국내 체포영장 및 법무부 입국 통보 대상으로 분류됐다.

적색수배 중인 A씨 부부의 국내 송환은 9개월째 지연 중이다. 두 사람은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수용시설에 구금된 것으로 파악됐다.

울산경찰청 관계자는 "사건의 실체를 끝까지 밝히고, 현지에 남은 조직원 전원 송환을 목표로 수사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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