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에 대한 인식을 바꾼 수전 브라운밀러 별세···‘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저자

2025-05-26

강간을 권력과 폭력의 범죄로 재구성하고, 강간에 대한 현대적 관점을 정의한 저서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를 펴낸 미국의 저널러스트이자 작가, 페미니즘 활동가인 수전 브라운밀러가 24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0세.

뉴욕타임스(NYT)는 고인의 친구이자 작가인 앨릭스 케이츠 슐먼이 브라운밀러가 장기간의 투병 끝에 낙상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뉴욕 브롱크스의 병원에서 숨졌다고 전했다고 25일 보도했다.

1975년 출간된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는 고대 바빌론부터 시작해 수 세기에 걸친 강간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뤘으며, 전쟁 중 패배 집단을 굴복시키기 위한 군사 전력으로 강간이 이용된 측면을 분석하는 등 강간에 대한 기존 통념을 깨는 해석을 내놔 주목받았다.

전 세계 12개 언어로 번역됐으며, 뉴욕 공공도서관에서 20세기 가장 중요한 100권의 책 중 하나로 선정됐다. 한국에서는 ‘미투 운동’ 열풍에 힘입어 출간 43년 만인 2018년에 번역 출간됐다.

이 책의 출간으로 전쟁으로 폐허가 된 방글라데시에서 발생한 집단 강간에 대한 실시간 보도가 이뤄졌으며, 사회가 강간에 갖고 있던 인식을 변화시키는데 마중물이 됐다고 NYT는 전했다.

1970년대 부상하던 여성운동의 물결 속에서 성폭력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변화하는 가운데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의 출간은 강간죄에 대한 사회 제도적 변화를 이끄는 계기가 됐다. 강간 피해자 지원센터가 설립되고, 부부 사이의 강간도 범죄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아 제3자의 증언을 요구했던 규정도 폐지됐으며, 피해자의 과거 성생활 이력이 법정에서 불리하게 활용되지 못하도록 하는‘강간 보호법’도 통과됐다.

브라운밀러는 1935년 뉴욕 브루클린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히브리 학교에 다닌 그는 “신체적 피해, 특히 여성에 대한 폭력의 공포에 맞서 싸우겠다는 선택은 히브리 학교에서 홀로코스트에 대해 배운 것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한때 연극배우를 꿈꿨던 브라운 브라운밀러는 오디션에서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하자 잡지사 기자로 일하기 시작해 뉴스위크, 빌리지보이스, ABC TV 등에서 일하기도 했다.

당시 시민권 운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브라운밀러는 미국 남부에서 인종차별 철폐시위와 페미니스트 모임에 참여했다.

여성을 비인간화하는 포르노(성인영화) 산업이 성폭력의 주요 원인이라고 봤던 브라운밀러는 포르노 산업 반대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브라운밀러는 1970년 성인 잡지 ‘플레이보이’ 발행인 휴 헤프너가 여성 억압에 기반한 제국을 건설하고 여성들의 인간성을 부정해 동물처럼 보이게 만들어 비하한다고 비난했다.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는 베스트셀러 정상에 오르며 화제가 된 동시에 많은 비판을 받은 논쟁적인 책이었다. ‘반남성적’이라는 이유로 공격받았으며, 때로 좌우 모두에게서 비판을 받았다.

보수적인 작가 조셉 소브란은 “브라운밀러가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은 학문이 아니라 잔소리일 뿐”이라며 “모든 여성이 모든 남성을 공포스럽게 여기도록 하는 의식적인 협박”이라고 비판했다.

흑인 민권운동가이자 공산주의자로 알려진 앤젤라 데이비스는 브라운밀러가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의 역사에 관해 몇 가지 사건에 대해 잘못 해석했다고 비판했다. 데이비스는 “브라운밀러는 상황과 관계없이 백인 여성의 편을 들기로 선택해 인종차별주의에 굴복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평생을 글쓰기에 바쳤던 브라운밀러는 1989년 소설 <웨이버리 플레이스>, 1994년 <베트남을 보다>, 1999년 여성 운동에 대한 내부 고찰을 다룬 <우리 시대: 혁명이 회고록>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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