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투기·미사일에서 반도체까지… 첨단산업의 필수 소재
中, 수출 통제 카드 꺼내… "0.1%라도 중국산이면 허가"
美, 뒤늦게 자립 시도… 생산량은 中의 1%
[서울=뉴스핌] 고인원 기자= 미·중 간 관세 갈등이 재점화되며 '희토류(rare earth elements)' 가 새로운 전략 무기로 떠올랐다.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첨단산업의 생명줄이자 국가안보의 핵심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 전투기·미사일에서 반도체까지… 첨단산업의 필수 소재
희토류는 F-35 전투기, 이지스 구축함, 전기차 모터, 반도체 장비 등 거의 모든 첨단 제품의 핵심 소재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F-35 한 대에 400㎏, 이지스함 한 척에는 2400㎏ 의 희토류가 들어간다. 미사일·레이더·항공엔진에는 고열과 자력을 견디는 '사마륨(Samarium)' 자석이 사용된다.
문제는 미국이 이 핵심 자원을 사실상 100%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산 원료를 수입해 자국이나 동맹국에서 자석을 가공했지만, 중국이 군사용 희토류 수출을 통제하면서 이마저도 막혀버렸다.

◆ '중국의 석유'… 희토류 장악한 베이징
중국은 1990년대부터 희토류를 '중국의 석유'로 규정하고 국가 차원에서 집중 육성해왔다. 현재 전 세계 광산 생산의 70%, 정제·가공의 90% 이상을 중국이 차지한다.
희토류는 란타넘족 15개 원소에 스칸듐·이트륨을 더한 17개 원소군으로 구성된다. 이 중 사마륨(Sm)·디스프로슘(Dy)·가돌리늄(Gd)·테르븀(Tb)·이트륨(Y) 등 중(重)희토류 7종은 고온 안정성과 자성이 뛰어나 미사일, 전기차, 반도체, 풍력터빈 등에 필수적으로 쓰인다.
특히 중국은 분리·정제 기술을 독점하고 있다. 고순도 가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독성 화학물질과 방사성 폐기물 때문에 환경 규제가 엄격한 미국·유럽은 개발을 포기했다. 반면 중국은 이를 감수하며 '환경비용을 대가로 기술 우위'를 확보했다.
◆ 中, 수출 통제 카드 꺼내… "0.1%라도 중국산이면 허가"
최근 중국은 이 지배력을 무역 협상의 지렛대로 다시 꺼내들었다. 중국 상무부는 12월 1일부터, 중국산 희토류가 0.1%라도 포함되거나 중국 기술로 생산된 자석 제품의 수출에 정부 허가제를 의무화했다. 군사 목적 사용은 사실상 전면 금지되며, 중국인은 정부 허가 없이 해외 희토류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도 없다.
미국 워싱턴DC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이번 조치는 중국의 FDPR(외국 직접 생산 규칙) 에 맞서는 역(逆)버전"이라며 "희토류를 무기화한 전략적 맞대응 수단"이라고 분석했다.
◆ 美, 뒤늦게 자립 시도… 생산량은 中의 1%
미국은 1차 무역전쟁 이후 국방부를 중심으로 공급망 복구에 나섰지만 진척은 더디다. 현재 미국 내에서 상업적으로 가동 중인 유일한 광산은 캘리포니아 '마운틴 패스(Mountain Pass)' 광산으로, 2002년 환경 문제로 폐쇄됐다가 2018년 재가동됐다.
미 정부는 광산 운영사 엠피 머티리얼즈(NYSE:MP) 에 15% 지분 투자를 단행했고, 생산물 전량을 시세의 두 배 가격으로 매입하기로 약정했다. 그럼에도 연간 생산량은 중국의 1% 수준에 그친다.
또한 2024년 기준 미국의 희토류 생산량은 4만5000t(세계 2위) 이지만, 중국의 27만t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대부분은 정제 시설이 없어 다시 중국으로 보내 가공한다.

◆ "중국산 없인 못 만든다"… 안보까지 흔드는 자원전쟁
전문가들은 "희토류는 전기차·반도체·방위산업을 떠받치는 기초 소재로, 중국의 공급 통제는 경제 보복이 아니라 안보 전략"이라고 지적한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이 중국에서 사마륨을 들여와 군사용 자석을 만들어왔지만, 중국의 군사 수출 제한으로 이 방식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중국의 새 수출 제한은 방위산업을 정면 겨냥하고 있다. F-35, 이지스 구축함, 잠수함, 토마호크 미사일, 드론, 정밀유도폭탄 등 희토류 없이는 생산이 불가능하다.
미국은 호주 리나스(Lynas) 등과 손잡고 정제·재활용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공급망 다변화에는 '시간'이라는 가장 큰 장벽이 남아 있다.
◆ "희토류는 21세기의 원유"… 미·중 패권 싸움의 향방
'첨단 산업의 석유'로 불리는 희토류는 이제 기술패권의 결정적 변수가 됐다. 중국은 희토류를 무역·외교의 지렛대로, 미국은 이를 탈(脫)중국 전략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무역 협상 결렬 시, 양국이 서로에게 가장 아픈 급소는 미국의 첨단칩 통제와 중국의 희토류 독점"이라며 "결국 승패는 공급망을 누가 먼저 '국산화'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한 워싱턴 무역분석가는 "희토류 공급이 끊기면 미군의 무기체계와 전기차, 반도체 산업이 멈춘다"며 "21세기 자원전쟁의 승자는 희토류를 통제하는 쪽"이라고 말했다.
koinwo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