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K팝 위기론’은 언제나 있었다. 그런 위기 속에서 성장해온 것도 사실이다. 다만 지금 K팝의 위기가 개별 아티스트나 그룹, 콘텐츠에서 비롯됐다고 말할지 몰라도 문화 콘텐츠 소비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이 근본 배경은 아닐 것이다. 일반 상품이 경제성이나 실용성을 따지는 것과 달리 문화 콘텐츠는 브랜드 가치를 포함한 문화적 향유 가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흔한 말로 ‘힙’해야 한다. 단지 멋지고 모양이 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시대정신을 이끌어가는 미래지향적 가치도 담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K팝은 위기에 봉착했다.

K팝 위기론이 거론되는 맥락에는 두 가지 현상이 자리한다. 하나는 음반 판매가 급감한 점이다. 한국음반콘텐츠협회의 써클차트에 따르면 2024년 K팝 실물 음반 판매량은 9890만 장이다. 2023년 1억 2020만 장과 비교할 때 17.7%나 줄었다. 단일 앨범을 300만 장 이상 판매한 그룹은 2023년엔 열한 개 팀이었지만, 2024년 일곱 팀에 불과했다. 다른 하나는 빌보드나 오리콘 차트에서 K팝 곡이 덜 눈에 띄는 것이다. 빌보드 200이나 핫 100은 물론 상위권에는 더더욱 드물다. 지민이나 로제가 있기는 하지만 오래 차트에 머문 사례가 상대적으로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K팝 ‘대장주’의 활동이 줄어든 것도 위기론의 징후로 거론된다. 즉 방탄소년단이나 블랙핑크가 돌아오면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잘 활동하고 있는 세븐틴이나 스트레이키즈가 있지 않냐고. 이들조차 분명 외형이 축소했다. 세븐틴은 2023년 K팝 최초로 연간 누적 음반 판매 1600만 장을 넘었는데, 2024년에는 896만 장에 그쳤다.
물론 방탄소년단이나 블랙핑크가 나온다면 K팝이 더 힘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것도 사실이다. 2024년까지 스포티파이 글로벌 누적 스트리밍 횟수 상위 2500곡 가운데 K팝 25곡이 모두 BTS(16곡)와 블랙핑크(9곡)의 노래다. 4세대에서 5세대 아이돌 그룹으로의 세대 계승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렇다고 앨범 판매 성적이 K팝의 성공 기준이라고 하는 것도 그다지 합리적이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팬덤 문화를 지속시키는 동력인데, 이 시대의 바람직한 문화가치를 담고 있느냐다. 내 아이돌만을 위한 ‘총공’과 초동 판매 차트 줄 세우기 같은 집단행동, 팬미팅 응모용 앨범 구입, 불공정 약관, 등골 브레이커 등등 K팝 차트와 앨범 판매를 둘러싼 논란이 여전하다. 듣지도 않는 앨범을 구매하는 것은 환경오염을 일으키기 때문에 팬덤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크다.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에 맞지 않는 일이다. 환경(environmental)에 해로울뿐더러 사회적(social) 협력과 책임을 다하는지도 알 수 없다.
지배구조(governance)도 건전하다고 할 수 없다. 한국의 기획육성 시스템은 도덕적 윤리적 책임만이 아니라 법적인 결함까지 거론되고 있다. 거기에는 하이브 사태가 결정적으로 작용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국내 최고 K팝 기업인 하이브의 행보는 실망스러웠다. 특히 하이브 경영진과 민희진-뉴진스의 갈등은 도덕, 윤리적 책임은 물론 글로벌 확장에 치명타가 되었다. 멀티 레이블 시스템은 사실상 무늬에 가까웠다. 5세대 걸그룹의 새로운 모델을 보여주던 뉴진스는 활발히 활동하지 못하게 되었을뿐더러 소비 가치의 근간이 되는 K팝의 이미지도 훼손되었다. 개별 아티스트의 콘텐츠나 이미지뿐만 아니라 K팝 전반의 ESG가 매우 중요한데 여기에 금이 간 것이다.
이런 와중에 주요 기획사들은 해외 현지인들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 론칭에 힘을 기울였다. 일본도 그렇지만 이미 각국에서는 K팝 그룹과 비슷한 콘셉트로 인기를 끄는 예가 나왔다. 북미권에서는 한국 아이돌 육성 시스템의 인권침해를 문제 삼아 소송을 건 멤버도 있다.
‘코로나 효과’도 이제 잦아들었다. 비대면 상황에서는 K팝이 상대적으로 우위를 가졌지만 이제는 대면 활동과 공연 문화가 다시 활발해지면서 K팝에 관한 관심과 의존도가 떨어지고 있다. 화려한 비주얼에 의존하는 콘셉트에서 벗어나 다양한 콘텐츠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최소한 ESG에 부합해야 한다.
얼마 전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가 내한공연에서 친환경적인 공연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사회적 메시지는 물론 세계인들의 고민을 담아냈다. K팝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 10대의 정서에만 함몰되는 것은 외연 확장에 한계를 만든다. 시대적 문화가치를 담는 행보를 보여주어야 한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필자 김헌식은 20대부터 문화 속에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특히 대중 문화 현상의 숲을 거닐거나 헤쳐왔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활약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한길을 가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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