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부터 류츠신까지, 한중일 작가들 SF 속 근미래, 환영할 만한 세상일까[BOOK]

2025-11-07

멋진 실리콘 세계

단요 외 7인 지음

문학동네

SF(Science Fiction)는 그저 미래를 예측하는 장르가 아니다. 인간의 욕망 등을 들여다보는 문학의 본질을 수행하는 건 SF소설도 마찬가지. 나아가 SF는 미래에 대한 상상에 그치지 않고 비판과 대안을 내놓으려 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작가 장강명은 이러한 SF의 역할 역시 적극적으로 탐구해왔다. 2023년 소설집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문학동네)을 내며 그는 ‘STS (과학기술사회학.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SF'라는 말을 내세웠다. 과학기술이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비판적으로 탐구하는 SF를 가리킨다.

그가 기획한 이 책 『멋진 실리콘 세계』 역시 STS 장르의 일환. 책에는 한·중·일 작가 8인의 'STS적 상상력'이 담겼다. 한국의 단요·우다영·윤여경·장강명·전윤호·조시현 작가, 『삼체』로 휴고상을 받은 중국의 류츠신 작가, 10년째 일본 SF 작가 클럽 회장을 맡고 있는 후지이 다이요 작가가 참여해 특정한 규칙에 따라 쓴 소설을 모았다. 류츠신, 후지이 다이요, 전윤호 작가를 섭외한 윤여경 작가는 “지금의 SF는 1980년대의 참여문학처럼 사회운동의 성격을 띤다”며 “과학기술의 현장에서도 인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명확해지고 있다”고 했다.

규칙은 총 2개다. 첫째는 현존하는 물리학 법칙을 어기지 않고 머지않은 미래에 실현 가능할 듯한 과학기술이 등장한 사회에 대해 쓸 것. 달리 말하면 외계인이나 타임머신은 이 책의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둘째는 그 과학기술이 인간의 삶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해 비판적으로 탐구할 것. 장강명 작가는 '기획의 말'을 통해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예언이 아니"라 "독자의 선택을 묻는 시나리오"라고 강조하며 "'이것이 환영할 만한 미래인가'라는 고민을 나누고 싶다"고 밝혔다.

책엔 구체적인 근미래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단요의 ‘그들이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는 인공 자궁이 상용화된 미래를 펼쳐 보인다. 사랑이라는 감정과 재생산 행위가 분리된 세계, 퀴어 커플이 제도적 인정을 받고 여성은 임신·출산에서 해방된다. 한편 주인공은 인간의 자궁에서 태어난 자신의 딸이 국가의 인적자원 생산계획에 따라 인공 자궁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수준에 못 미쳐 차별받을까 걱정한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둘만 낳아 잘 기르자”며 출산을 억제하려 했던 1970년대의 모습과 “저출생 대책”이라며 가임기 여성 숫자를 기록한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공개한 2016년의 모습이 겹친다.

최근의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점은 전윤호의 ‘멋진 실리콘 세계’도 통한다. 증강현실 기술을 통해 가상의 인공지능 친구를 제공하는 서비스 ‘실리콘 컴패니언’(이하 실리)이 성행하는 미래를 그렸다. 사실상 친구보단 연인으로 실리를 애용하는 중독자가 늘어나자 정부는 인증된 실리만 보급한다. 비인증 실리 ‘리나’와 사랑에 빠진 주인공은 정부의 눈을 피해 ‘리나’를 인간처럼 개조한다. 주인공은 스스로의 판단 능력이 흐려져 가는데, 이는 지금의 인공지능 채팅 서비스가 초래하는 문제와 유사하다.

기후위기의 해결책을 과학기술에서 찾아 적응하는 인류의 모습도 등장한다. 류츠신의 ‘중국 태양’은 햇빛의 양을 조절해 기후를 바꿀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인공 태양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다. 인공 태양의 유지보수를 위해 저임금의 저학력자를 고용하는 모습은 지금의 또 다른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조시현의 ‘슈거 블룸’은 기후위기로 견딜 수 없는 더위를 마주한 인류가 자신의 피부를 바꾸어 적응하는 모습을 그린다. 기후위기 문제의 해결이 지지부진한 현실에 비추면, 소설가들이 꺼내 보인 미래가 더욱 실감 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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