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메모리 업계에서 'SK하이닉스의 시대'입니다. 인공지능(AI) 메모리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맹활약하고 있기 때문이죠.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앞세워 지난해 4분기에는 8조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쓸어 담으며 역대 최대 실적을 내기도 했습니다. 영업이익률은 41%를 웃도는 기록적인 수치였죠.
메모리 업계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는 이 회사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어떤 영향을 받을지 살펴보겠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어떤 정책이 문제야?
관세가 가장 문제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장벽'을 상당히 강조하고 있죠. 이 구상은 미국 내 제조업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일환으로도 볼 수 있는데요. 외국 기업들이 높은 관세에 부담을 느껴 아예 미국 안에 제조 설비를 구축하면 내수가 살아날 수 있다는 게 기본적인 아이디어입니다.
반도체 사업에도 예외 없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유세에서 "반도체 기업의 높은 관세를 물리면 단 10센트도 보조금으로 주지 않아도 그들을 미국으로 오게 할 수 있었다"고 강조한 적 있습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SK하이닉스에 보조금을 지급하며 패키징 공장을 설립한 흐름과는 대치되는 발언이죠.
두 번째는 대중 압박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당시 중국 반도체를 상당히 거세게 압박했던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화웨이 반도체 제재는 물론이고, 2019년부터 네덜란드 ASML의 극자외선(EUV) 장비를 못하게 막았죠. 지금도 중국에는 EUV 노광 장비가 단 한 대도 못 들어 갑니다.
트럼프는 2기 행정부에서도 저가 반도체 공세를 펼치고 있는 중국을 누를 수 있는 강력한 카드를 준비하고 있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SK하이닉스의 중국 반도체 영업과 공장 운영이 트럼프 정책에 적잖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SWOT 분석: ①SK하이닉스의 강점은 뭐야?
SK하이닉스는 메모리, 특히 D램에서 엄청난 기술을 가지고 있는 회사입니다.
우선 HBM.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올리는 D램입니다. 용량이 크고, 정보 처리 속도가 빠른 데다 그래픽칩(GPU) 등 연산장치(XPU) 바로 옆에 붙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AI용 메모리로 제격이죠.
SK하이닉스는 세계 HBM 업계에서 D램 1위 삼성전자를 제치고 독보적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세계 AI 반도체 1위 엔비디아는 SK하이닉스를 상당히 신뢰하고 있는 분위기죠. 최첨단인 5세대 HBM(HBM3E) 12단 제품을 압도적 비율로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새로운 다크호스로 부상한 브로드컴도 SK하이닉스에 HBM을 주문했습니다. HBM 시장은 AI가 만개하는 상황에 영향을 받아 그 규모가 더욱 커질 것으로 주목됩니다.
일반 D램에 관한 기술도 대단합니다. 지난해 하반기에 10나노급 6세대(1c) D램 개발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해낸 것에 멈추지 않고요. 이제 원가 절감으로 생산성까지 극대화하고 있죠.
트럼프 2기 시대에서 SK하이닉스의 이러한 강점이 유감없이 발휘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AI에 대한 관심과 투자 스케일은 벌써부터 굉장합니다.
21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오픈AI, 일본 소프트뱅크, 오라클이 미국에 최소 5000억 달러(약 720조 원)를 투자해 새로운 AI 기업인 스타게이트를 만든다고 발표했죠.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구축이 목표인 만큼 HBM 최강자인 SK하이닉스가 스타게이트의 AI 인프라 공급망에 최우선 순위로 진입할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SWOT 분석: ②SK하이닉스의 약점은 뭐야?
SK하이닉스의 사업적인 약점은 공간입니다. 메모리 시장 1위인 삼성전자와 극명히 대비되는 차이인데요.
SK하이닉스는 현재 본사가 있는 이천사업장, 지역 거점인 청주사업장, 해외 공장인 우시 공장에 각각 전공정 거점이 있습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2027년 2분기 첫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죠.
하지만 2022년 말부터 회사가 HBM으로 이렇게 대박이 났는데도 현재까지는 마음 놓고 생산 능력을 늘릴 수 있는 공간이 제한적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올해인데요. 청주의 새 공장 M15X가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가동이 된다고 해도, 그 사이 시간과 생산 능력을 벌어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천사업장의 레거시 D램 공간과 기존 낸드 팹을 거의 '쥐어짜내듯' HBM용 D램 라인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이 공간의 문제를 조금 확장해서 트럼프 행정부와 연계해 보면요. 조금 전에도 짚어드린 고율 관세가 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당장 SK하이닉스는 미국에서 생산 기지가 없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해 최대 60%, 한국과 대만을 포함한 모든 나라의 수입품에 10~2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주장한 적 있죠.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이를 모두 실행에 옮길지는 미지수"라면서도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 내 투자를 확대하지 않으면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SK하이닉스도 영향권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주력 사업인 HBM의 경우 대만 TSMC의 조립 라인을 거쳐 미국으로 수출되지만, 단일 D램 모듈은 미국으로 수출되는 경우가 많죠. '빅테크' 고객이 즐비한 미국은 SK하이닉스에 상당히 중요한 시장인데, 트럼프 행정부의 높은 관세가 사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해야 합니다.
SWOT 분석: ③SK하이닉스의 기회는 뭐야?
단연 AI입니다. 인공지능은 챗GPT 같은 생성형 AI 서비스 외에도 정말 다양한 분야에 응용이 되고 있죠.
자율주행, 로봇, AR과 VR, 바이오까지 산업 전반에서 만개하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AI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제품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맞춤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요.
좋은 예가 지난해 애플이 발표한 확장현실(XR) 기기 '비전 프로'에 장착된 특수 메모리죠. R1이라는 새로운 AR용 프로세서 옆에 자그맣게 장착된 특수 메모리입니다.
아직 물량이 많지는 않지만 SK하이닉스 특유의 고객 '맞춤형' 메모리 설계 능력이 빛을 발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 SK하이닉스는 HBM을 넘어서 기판 위에서 다양한 반도체가 마치 한 개 반도체처럼 동작하게 하는 2.5D 패키징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고 하죠. 이것도 일종의 '커스텀' 반도체 사업이고 파운드리 지존 TSMC의 주요 사업이기도 한데, 미국 빅테크 IT 업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고강도의 관세 압박을 한다고 해도, 시장의 수요와 요구를 이길수는 없죠. 트럼프 시대에서도 글로벌 IT 업계에서 SK하이닉스의 인기는 계속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SWOT 분석: ④SK하이닉스의 위협은 뭐야?
트럼프 행정부의 고강도 중국 압박이 큰 위협으로 예상됩니다.
SK하이닉스는 우시에서 D램 공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 연간 D램 생산량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죠.
현재 이곳에서는 10나노급 4세대(1a) D램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1a D램에는 극자외선(EUV) 노광 공정이 적용되는데요. 우시에는 EUV 노광기를 들일 수 없으니까, 현재 비행기로 이천과 우시 사이에서 웨이퍼로 옮기는 방법을 활용하는 '초강수'를 두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또다시 공간의 문제로 이어지는데요. 최첨단 D램인 1b D램으로의 업그레이드를 이어갈 수 있을 지에 대한 위협입니다.
게다가 SK하이닉스는 현재까지는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자격으로 10나노 4세대 D램을 중국에서도 생산할 수 있는데요. 만약 트럼프 정부가 대중 압박 강도를 더욱 올려서 미국산 핵심 장비를 우시 공장에 더이상 들이기 어렵다거나, 지금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정책을 내놓는다면 현지 팹 운영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또 한가지 위협은 '보조금'입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12월 정권 말에 SK하이닉스의 인디애나 주 공장 설립 건에 대해 4억 5000만 달러(약 65000억원) 직접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죠. 트럼프 대통령은 보조금에 대해 매우 보수적인 입장입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지급이 확정된 보조금도 규모가 작아질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래서 SK하이닉스의 올해 실적 전망은 어때?
약점과 위협이 있지만 SK하이닉스는 올해에도 HBM을 앞세워 좋은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회사 측은 이미 지난해 10월 2024년도 3분기 실적발표회에서 "내년에 판매할 HBM이 모두 주문완료가 됐다"고 밝히기도 했고요. 많은 AI 반도체 업체들이 SK하이닉스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SK하이닉스의 예상 매출은 81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해보다 23% 이상 성장한 수치입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23조 원을 훌쩍 뛰어넘었는데, 올해는 약 40% 증가한 32조 원 이상을 기록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도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