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지만 안에는 굉장히 강인한 모습이 있었습니다. 한강 작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서 그의 눈빛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노력했던 사진 중 하나입니다.”
광주광역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열리는 구본창의 ‘사물의 초상’ 전시에 서른 세 살 한강의 사진이 걸렸다. 2003년 촬영한 사진 속 한강은 우산을 든 채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정면을 바라보는 눈빛엔 단단한 힘이 실려있다.
구본창은 “2003년 ‘그녀의 드라마’라는 시리즈로 기업인, 영화 감독, 건축가 등 각 분야에서 앞서가는 여성들을 촬영했다”며 “한강 작가의 서재가 있는 집에서 촬영하던 중 바깥의 놀이터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설명했다. 구본창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셨고, 광주 지역 출신이라 이곳 관람객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인물사진 가운데 한강 작가 사진을 고르게 됐다”고 덧붙였다.
‘사물의 초상’은 아시아 현대미술 거장을 소개하는 ‘ACC 포커스’로 한국의 현대사진을 개척한 구본창의 개인전을 연다. 구본창이 2000년대 이후 발표한 사물 사진 연작을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한국전쟁유물, 조선백자, 신라금관 등 역사성을 간직한 사물들을 찍은 ‘공적 사물’과 구본창의 개인적 수집물과 취향이 반영된 일상의 사물을 촬영한 ‘사적 사물’ 영역으로 전시가 구성됐다.
넓은 ACC 전시공간을 활용한 디스플레이가 돋보이는 전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천장에서 흘러내린 5m 길이의 천에 프린트된 조선백자 사진이 족자처럼 걸려있고, 그 아래로 화려한 금관 등 신라의 황금유물의 사진이 바닥의 라이트박스에 가로로 설치돼 있다.
조선 백자 사진은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런던 영국박물관, 교토 고려미술관 등 해외 박물관에 소장된 백자 14점을 촬영한 것이다. ACC 나은 학예연구사는 “구본창 작가가 해외에 반출된 백자들을 다시 한국으로 데려올 수 없어서 사진으로 마나 그 영혼을 한국으로 다시 데려오고 싶다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 생각을 담아 백자의 영혼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연출했다”고 말했다. 황금 유물 사진을 바닥에 뉜 것은 “금관이 왕과 함께 땅에 묻혔을 때 반짝반짝 빛나던 상태를 연상해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유물 발굴 현장과 같이 연출했다”고 설명했다.
‘사적 사물’을 전시한 공간에선 탈과 꼭두, 15세기 이후 프랑스 건축양식에서 나타난 샤스루(chasse-roue·마차나 차량으로 인한 파손을 막기 위해 문의 귀퉁이에 설치하는 경계석), 손길에 둥글게 닳은 비누, 일상이나 여행지에서 수집한 사물들을 촬영한 사진을 선보인다.
구본창이 한국의 4대 고궁의 단청 이미지를 영상으로 만든 ‘코리아 판타지’(2017)도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선보인다.
구본창이 찍은 박완서, 이정재, 심은하 등 유명인의 사진과 구본창의 피사체가 됐던 수집품의 실물도 함께 전시했다. 짙은 갈색이 스민 커피 필터를 겹겹이 쌓아 올린 탑, 파리 벼룩시장에서 가져온 1876년에 쓰인 노트, 모로코 여행 중 가져온 가게의 천막 등 저마다 사연을 간직한 사물들이다. 전시는 내년 3월30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