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육은 종전과 함께 멈추지 않았다. 전쟁의 생존자들은 닭과 야생조류에게 또 다른 희생을 강요해야 했다.”
부천 삼정동의 옛 쓰레기 소각장 중앙제어실에 걸린 흑백 사진은 다소 초현실적인 느낌이 든다. 철조망에 갇힌 살아있는 닭과 기둥에 매달린 죽은 새들의 축 늘어진 몸뚱이들과 깃털.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나무 박스에 기대어 카메라를 응시하는 한 청년은 장사꾼이라기보다는 대학생처럼 보이지만 사진 캡션에는 분명히 “닭장수”라고 적혀 있다. 1957년 서울 남대문 시장의 풍경이다. 젊은 시절의 고 한영수(1933-1999) 작가는 산 짐승과 죽은 짐승 사이에서 전쟁의 기억을 떠올렸다. 오는 22일까지 부천아트벙커B39에서 열리는 <우발적 미래의 시원>에 걸린 사진 중 하나이다.
같은 공간에 사진을 건 이재갑, 강용석 작가의 작품은 전쟁의 직접적인 기억이라기보다는 그 흔적들이다. 이재갑 작가의 사진은 베트남 전역에 세워진 한국군 증오비이고, 강용석 작가의 사진은 54년 동안 주한미군이 폭격훈련장으로 사용했던 매향리 풍경이다. 이 둘의 사진은 비싼 값에 팔리기 위해 세련된 액자에 담기지 않았다. 이재갑의 사진은 제어실 통제장치 기계에 붙어 있고, 강용석의 사진은 모니터에 흘러나온다. 이재갑의 사진에는 많은 사연이 추가된다. 베트남 국민의 전쟁에 대한 기억으로 그들은 한국군의 모습을 보지도 않아도 총소리를 듣고 식별할 수 있었단다.
유인송풍실과 크레인 조정실 등 벙커의 다른 공간에도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이 이어진다. 신이피, 김옥선, 안성석, 김의로, 김전기, 임노아, 나인수, 조은재, 노기훈, 송미경, 함혜경 작가가 사진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참여했다. 계엄의 역사에서 첫 번째라고 여겨지는 제주 4.3사건, DMZ투어, 그 밖의 군사시설 등에 대한 이미지이다.
전시를 총괄 기획한 정훈 계명대 사진미디어과 교수는 이 작품들이 옛 쓰레기 소각장이라는 공간에 전시된 까닭도 고민해보기를 관람객에게 당부한다. 한국전쟁 발발 75주년을 앞두고 “전쟁의 기억과 후기억, 그리고 동시대성이 읽히면서 형성되는 현재의 시간성”을 고려한 전시라는 것이 정훈 교수의 설명이다. 전시를 기획하고 참여하고 구경하는 대부분의 이들에게 전쟁은 아마도 교과서나 언론을 통해 알게 된 ‘후기억’에 해당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현재의 시간성’에 촉각을 세워야 할 것이다. 비록 6시간 만에 끝났지만, 비상계엄의 후유증이 요동치고 있기 때문. 계엄의 영문 martial은 전쟁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