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청년일보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압박 등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이종 산업 간 융합이 요구되는 가운데, 재계 내 ‘동맹 전선 구축’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과 포스코그룹은 지난 21일 서울 양재동 현대차 사옥에서 ‘철강 및 2차전지 소재 분야 상호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에 따라 포스코는 현대제철이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건설하는 제철소 프로젝트에 지분 투자 형태로 참여한다. 총 사업비는 약 58억 달러(한화 약 8조5천억 원) 규모다. 구체적인 투자 비율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조(兆) 단위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루이지애나 제철소는 자동차 강판 생산에 특화된 공장으로, 오는 2029년 상업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간 생산 능력은 270만 톤에 달할 전망이다.
국내 철강업계 1·2위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손잡은 이번 협업에 대해 재계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철강 관세 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생존형 동맹’으로 해석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일부터 미국에 수입되는 모든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했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선 8조원 이상의 막대한 투자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고, 포스코그룹은 25% 철강 관세를 피해 미국 생산 거점 확보를 할 수 있어 재계에선 '윈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양사는 또 이차전지 소재 분야에서도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을 위해 협력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세계적인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이후의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 적극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포스코그룹은 리튬을 비롯해 양·음극재 등 이차전지소재 사업에서의 경쟁력을, 현대차그룹은 친환경 미래 모빌리티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양사의 시너지가 기대된다. 공급망 강화는 물론, 차세대 소재 개발 등 지속 가능한 협력 모델을 구축할 방침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그간 경쟁 구도를 형성해왔던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트럼프가 촉발한 '관세 전쟁'으로 생존 도모 차원에서 협력 관계를 구축한 것"이라고 밝혔다.

창업주 시절부터 2세대에 이르기까지 경쟁 구도를 형성해온 삼성가와 현대가도 최근 5G와 배터리 등 전방위 사업에서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현대차는 올해 1월부터 삼성전자와 함께 진행한 '5G 특화망 레드캡' 기술 실증을 마치고, 관련 기술을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전자 박람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25)에 전시했다.
5G 특화망은 기업이 특정 구역 내에서 자체 통신망을 운영할 수 있도록 구축한 전용망이다. 별도의 기지국과 주파수를 사용해 외부 통신망과의 간섭 없이 안정적인 통신이 가능하다. 통신 지연이나 단절이 거의 없고, 대용량 데이터도 신속하게 송수신할 수 있으며, 다수의 산업용 로봇과 무선장비를 중앙에서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특화망은 단말기 설계의 복잡성, 고도의 인프라 기술력, 높은 전력 소모 등 까다로운 조건을 수반한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함께 실증한 레드캡 기술은 기존 5G보다 단말 구성은 간단히 하고 장비는 소형화했으며, 공장 환경에 적합하도록 주파수 대역폭도 축소했다. 이를 통해 저전력·저사양·저비용으로 와이파이를 대체할 수 있는 안정적이고 빠른 통신 환경을 구현했다.
양사는 5G 외에도 배터리 분야에서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월 삼성SDI와 현대차·기아는 경기 의왕연구소에서 '로봇 전용 배터리 공동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바 있으며, 향후 각각 보유한 자원과 전문 기술 역량을 결집해 로봇 최적화 배터리를 개발하고, 다양한 서비스 로봇에 탑재하기로 약속했다.
협약에 따라 현대차·기아 로보틱스랩은 신규 개발 배터리의 로봇 적용 평가 및 성능 고도화를 담당한다. 다년간의 로봇 개발 및 운용 경험으로 축적한 기술 노하우를 활용해 배터리 최대 충·방전 성능, 사용 시간 및 보증 수명 평가 등을 진행한다.
삼성SDI는 고용량 소재 개발과 설계 최적화를 통해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와 효율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재계 내에선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는 배경에 대해, 최근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날로 가속화되면서 경쟁 구도보단 강력한 기술동맹으로 미래를 내다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과거에는 생존 도모 차원에서 각 기업들간 제품군 경쟁이 치열해 적대적 관계 구도를 이뤘지만 오늘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고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생존은 다른 의미가 됐다"고 말했다.
【 청년일보=이창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