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잔] 방정식

2025-05-16

대상을 기록한 사진은 필연적으로 무엇인가를 지시한다. 그리고 우리의 지각은 이미지를 보는 순간 그 지시적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 작용은 언어적이다. 광고처럼 단순하고 명료한 사진은 이 과정이 쉽다. 다만 복잡한 현실 세계에서는 이미지의 지시성과 언어적 의미 사이가 자주 어긋난다. 예를 들어 해 질 무렵 바닷가를 걷고 있는 사람의 사진이 피서객인지 난민인지는 언어적 설명 없이는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사진은 대상 종속적일 뿐만 아니라 언어 종속적이기도 하다. 이런 사진의 특성에 민감한 작가들이 있다. 그들은 사진에 대한 빠른 해석을 경계하기 위해 다양한 비틀기를 시도한다. 부러 해석이 모호한 장면을 촬영하기도 하고, 알고 보면 전혀 뜻밖인 상황을 기록하기도 한다. 만약 여기에서 더 나아가 해석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한 사진이 있다면 그것은 과연 사진으로 작동할 수 있을까.

서동신의 ‘방정식(Equation)’은 작가가 촬영한 스냅 사진들을 물리적으로 나열한 연작이다. 서로 겹치거나 나란히 놓은 이미지들 사이의 연관성은 전혀 없다. 이를테면 작가는 여러 개의 폴더에 저장해 둔 이미지 중에서 무작위로 꺼내 조합하는 방식으로 우연성을 시도한다. 이 과정에서 이미지가 지니는 조형성이나 정보성, 디자인적 요소들은 고려되지 않는다. 사진의 지시성과 재현성을 부정하고 해체한 이 작품에서는 오직 서로 다른 이미지 간의 충돌과 상호 작용만이 남는다. 이 작업을 보고 시지각이 의미를 해석하려다가 포기하는 순간, 이것은 구상일 수밖에 없는 사진의 운명을 뒤로하고 하나의 추상 이미지로 전환된다. 말 그대로 의미 없는 사진이 되는 셈이다. ‘알다’와 ‘보다’가 한 쌍이던 사진이 오직 보는 것만을 위해 존재하게 된다. 작가는 이 과정을 디지털시대 사진의 확장성에 대한 시도라고 여긴다. 파편화된 사물 이미지와 색면의 조합만이 남은 그의 디지털 추상 사진은 모호하기에 오히려 오래도록 바라볼 수밖에 없다.

송수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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