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식과 비정상
지난달 KBS ‘추적60분’이라는 프로에 ‘7세 고시, 누구를 위한 시험인가’ 편이 방송되었다. 언뜻 들으면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은 어린 7세가 고시라니 이해가 가질 않을 제목이었다. 더군다나 시골에서 선생노릇하고, 자녀도 시골에서 키운 부모로서 7세 고시라니? 하지만 내용을 보면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사교육 시장이 위축될까 영어 사교육 연령을 초등학교도 들어오지 않은 유아들에게 넓히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엄마와 레포도 형성되지 않은 3세 아이도 영어 사교육에 맡겨진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기까지 했다. 아무리 사교육이 판치는 세상이라고 해도 도대체 어떤 아이를 키우고 싶은 것인지 너무한다는 생각이 컸다. 하지만 요즘 돌아가는 세상을 생각해보면 비상식이 상식인 것처럼 여겨지고, 비정상이 마치 정상인 것처럼 생각되는 세상이니 무엇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나 있을까 싶다.
부모 마음대로 자식을 키울 수 있나?
고1 때 자퇴한 딸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시골에서 사교육 한 번 하지 않고 자란 딸은 고1 때 학교를 그만두고 춤과 음악 공부를 한다고 어린 나이에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솔직히 딸이라 걱정은 되었지만 스스로 하고 싶은 마음이 넘치고 자신이 있다는데 부모로서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결국 딸은 17살 때 서울로 올라갔고, 해보고 싶은 음악과 춤을 마음껏 공부했다. 어느 땐 대학에 간다며 어느새 고졸 검정고시도 했다. 그리고 K-POP학과 대학에도 입학했다. 하지만 그 또한 양이 차지 않았는지 한학기 다니다 결국 그만두었다. 그러더니 우리나라에서는 공부할 상황이 되지 않는다며 외국으로 유학을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혼자 유학을 알아보았고, 어느새 유학을 가기 충분한 영어성적을 취득했다. 그리고는 작년 8월에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환율이 너무 비싼 형편과 부모가 유학비용을 대기에 힘든 상황을 빼고는 모든 것이 마음에 들 만큼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비용 생각하면 보낼 형편이 되지 않았지만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었다. 부모 마음대로 자식을 키울 수 없기 때문이다.
영어 공부를 어떻게 시켰느냐고 사람들은 의아한 듯 묻는다. 딸은 시골에서 나고 자란 탓에 영어 사교육 한 번 받지 않았는데 스스로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영어에 관심을 가졌고, 영어 음악을 들으며 드라마를 자연스럽게 보게 되면서 외국 사람과 자연스럽게 말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부모 욕심으로 영어 실력이 늘지도 않겠지만 영어 공부란 게 학원 교육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현실
“아빠, 저는 다시 태어나면 학원 열심히 다닐 거에요.”
지금 대학에 다니던 아들이 고등학교 시절에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던 아이들 몇을 두고 혼자 자책하며 한 말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사교육을 다닌다고 모든 아이가 공부를 잘할 수는 없겠지만 몇몇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누적한 사교육으로 무장한 영어 실력을 갖추었고, 아들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편으론 미안했고, 한편으론 사교육을 무시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구나 싶었다. 하지만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서 할 수 있다면 조금 힘들겠지만 앞으로 더 힘을 내어 살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위로했다.
사교육을 무시할 수 없는 사회 구조, 둘레에 사는 모든 가정이 사교육에 의존하니 자유로울 수 없는 교육 현실, 인 서울과 의대를 향해서라면 무한 질주하는 사회 분위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현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꿈
학교 현장은 설상가상으로 더 어렵다. 강원도에서 체험학습을 인솔했던 교사가 금고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체험학습을 가지 말아야겠다는 선생들의 자조 섞인 말이 현실이 되고 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느니 차라리 가지 말자고 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간다. 학교 교실에서 공부하고 나와 사교육으로 쉴 새 없이 공부만 해야 하니 숨 쉴 틈이 있을까.
“다른 사람 다 하는 데 대안이 없잖아요.”
“우리 아이만 뒤처지면 안 되잖아요.”
“공부를 잘하면 나중에 기회가 많아지잖아요.”
“좋은 대학에 가서 안정되고 좋은 직업을 얻어야죠.”
사교육 기관은 불안한 부모들을 계속 자극하고, 아이들은 그 스트레스에 점점 병들어간다. 나 또한 또렷한 대책이 있는 건 아니다. 안타까울 뿐이다. 돈은 돈대로 들고, 그렇다고 모든 아이들이 사교육 효과를 내는 건 아닐 테니까.
다만 현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꿈을 가끔 꾼다. 아이들이 이리저리 뒹굴뒹굴하다 보면 심심해서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책을 잡고 책에 빠지는 아이가 그리워진다. 영어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어 팝송을 가까이하며 영어 듣고 말하는 걸 편하게 하는 아이도 보고 싶다.
윤일호 장승초 교사
저작권자 © 전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