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장상훈)은 무형유산에 대한 고정관념에 도전하며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는 책 2종을 펴냈다. 무형유산은 통상적으로 손에 잡히지 않는 비물질적인 것이자 과거에 머물러 있는 옛것으로 인식돼 왔다. 이번에 선보이는 두 권의 책은 무형유산이 유형유산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과거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현재로 이어지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무형유산 관련 아라 밖 연구자를 대상으로 2023년 진행한 공모에서 뽑힌 원고를 엮어낸 이번 책은, 국내뿐 아니라 나라 밖 독자들을 위해 국문과 영문 원고를 모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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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아그니에슈카 파우워프스키-메인빌(Agnieszka Pawłowska-Mainville)의 <살아있는 유산의 문화경관: 캐나다ㆍ폴란드의 무형유산과 언어 가치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은 캐나다 이민자인 저자가 캐나다와 모국인 폴란드 자연 경관에 내재한 무형유산의 의미와 값어치를 조명한 책이다. 두 번째, 지트카 치르클로바·바츨라프 리슈카(Jitka Cirklová and Václav Liška)의 <시간을 잇는 전통, 빛나는 체코의 무형유산>은 체코의 무형유산이 현대 디자인, 사회운동, 디지털 기술과 만나면서 어떻게 전승되고 변화·발전하는지 연구하는 책이다.
□ 살아있는 유산의 문화경관: 캐나다ㆍ 폴란드의 무형유산과 언어 가치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미대륙에서 자연 공간은 ‘비어 있는 야생의 공간’으로 인식돼왔다. 라틴어로 테라눌리우스(terra nullius, 라틴어로 ‘빈땅’, ‘아무에게도 속해 있지 않은 땅’을 뜻한다.) 개념은 원주민이 전통적으로 소유하던 영역을 미국이 몰수하는 정책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돼 왔다. 지은이는 캐나다ㆍ폴란드 원주민의 자연경관을 빈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무형유산이 담겨 있는 ‘문화 경관’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하며, 유형유산과 무형유산의 유기적 연결을 제안한다.
(최초의 복합유산 캐나다 피마치오윈 아키(Pimachiowin Aki))
피마치오윈 아키는 캐나다 매니토바주와 온타리오주에 걸쳐 있는 광대한 자연 보호구역으로, 아니시나베(Anishinaabe) 언어로 ‘생명을 주는 땅’을 뜻한다. 이곳에는 보레알 숲 등 자연유산뿐 아니라, 아니시나베 원주민의 생활 방식과 신념 체계를 보여주는 다양한 유·무형의 문화유산이 포함되어 있어, 2018년 첫복합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피마치오윈 아키는 이전까지 유형과 무형, 자연과 문화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해 온 유네스코의 관행을 변화시킨 첫 사례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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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리피체 숲과 나무 양봉업)
폴란드의 전통적인 나무 양봉업은 북동쪽 벨라루스 국경으로부터 약 200m 떨어진 곳에 있는 리피체 삼림 지역에서 수 세기 동안 이어져 내려온 독특한 양봉방식으로, 2020년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전통적으로 나무 양봉가는 자신의 선대로부터 벌통을 물려받아, 나무에 매달고 자신만의 독특한 사인을 남기는데, 이 전통에는 벌과 벌의 행동 양식, 숲 생태계에 대한 지식이 반영되어 있다. 리피체 숲과 나무 양봉업 전통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독특한 문화경관을 만들어낸다.
시간을 잇는 전통, 빛나는 체코의 무형유산
유네스코는 2003년 무형유산보호협약에서 무형유산을 ‘세대를 거쳐 전승되고, 시간에 따라 진화하며, 공동체에 정체성과 연속성을 부여한다’라고 정의한다. 지은이는 체코의 무형유산이 단순히 과거를 기리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 체코 사회의 살아 있는 일부로 자리하며, 각 세대에 의해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재해석된다고 말한다. 또한 무형 유산을 계속 살아있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형유산을 현대 창작 작업의 영감으로 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패션 디자인으로 되살아난 블루프린트 기술)
체코어로 ‘모드로티스크(Modrotisk)’라고 불리는 블루프린트 기술은 중국에서 개발되어 18세기 유럽으로 전파된 전통 직물 염색법으로, 2018년 체코 등 5개 유럽 국가가 공동 신청하여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됐다. 블루프린트 기술은 오늘날 체코에서 전통과 현대 미학을 결합시키려는 디자이너들에 의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체코의 유명한 디자이너 주자나 오사코(Zuzana Osako)는 유서 깊은 블루프린트 공방 스트라주니체(Strážnice)와 협력하여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체코 올림픽 선수단 의상을 디자인했다. 클라라 나뎀린스카(Klára Nademlýnská)와 베로니카 빔펠로바(Veronika Vimpelová) 같은 다른 디자이너들도 그들의 컬렉션에서 블루프린트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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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 게임으로 되살아난 중세 체코 마을과 전통 펜싱)
2011년 체코의 게임 회사 워호스 스튜디오(Warhorse Studios)는 RPG 게임 ‘킹덤 컴: 딜리버런스(Kingdom Come: Deliverance)’를 개발했다. 게임 플레이어들은 체코 포사자비(Posázaví) 지역의 경관과 마을을 탐색하며 전통 펜싱 기술을 체험하게 되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펜싱 동작과 무기 등은 전통 검술 전문가와 협업하여 섬세하게 고증되었다. 저자는 게임과 같은 새로운 방식으로 역사와 전통이 젊은 세대에게 효과적으로 전파될 수 있으며, 게임 속 도시에 대한 관광을 증가시켜 경제 발전에도 이바지한다고 말한다.
국립민속박물관 관계자는 “이번 국제 무형유산 소책자 발간이 낯선 나라와 사람들의 삶, 그 속에 뿌리내린 무형유산에 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우리 민속 문화 역시 인류 보편 역사 속에서 새로운 관점으로 재해석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국제 무형유산 관련 두 권의 책은 국립민속박물관 누리집(www.nfm.go.kr)의 <발간자료 원문 검색> 페이지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