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이대복 한국 FTA 원산지연구회 이사장) A씨는 IT 제품을 제조해 수출하는 중소 제조기업에서 20년 정도 수출입 통관, 무역업무 등을 담당하면서 이 분야에서는 자타공인 전문가가 됐고, 주변의 중소기업들 수출입 통관·무역업무에 대한 자문역할도 해주고 업무를 대신 처리해 주기도 했다.
수출입 통관, 외환 관리, 무역금융 등에 대한 전체적 감이 잡히고 나름대로 현행 제도상의 빈 틈(loophole)도 보이자 이를 악용해 자금세탁을 시도했다가 세관의 정보분석에 의해 적발됐다.
이 전자제품(수출품)을 배에 싣기도 전에, 그는 홍콩, 싱가포르 등에 있는 거래선에 연락해 수출물품이 그쪽 항구에 도착하는 즉시 컨테이너째로 그대로 한국으로 다시 실어 보내 달라고 한다.
그 화물이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한국에 도착하는 즉시 세관에 수입신고하고 통관 절차를 밟는다. 수입가격을 조작하고, IT 제품인 수출물품의 품명을 당초 수출시에는 (예를 들어) TFT LCD MODULE로 수입시에는 (예를 들어) NFC CHIP 으로 약간 다르게 신고한다.
동일한 화물을 가지고 이처럼 가짜 수출과 수입을 연달아 일종의 회전거래(Revolving transaction)를 하는 것인데, 이러한 거짓 수출실적을 근거로 그가 관리해주는 회사들은
①글로벌 강소기업에 선정돼 수억원의 정부보조금을 타고, ②기존 투자자들의 투자를 유지하고, 또 신규로 투자금을 모집하고 ③중소기업대상 정부지원사업으로 신청하여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거액의 지원금을 타고, ④해외 마켓팅 비용의 지원금을 수령하고, ⑤정부지원 대상 사업자로 은행에서 거액의 대출금을 받는등 정부의 수출지원과 무역금융상의 혜택을 편취 ⑥수출실적을 이용하여 영세율을 적용 받아 부가가치세를 포탈 했다.
무역거래를 이용한 자금세탁 방법은 가장 복잡한 돈세탁 방법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역거래를 이용한 자금세탁 범죄가 빈번히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금융실명제 강화 등 국내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 비자금 형성이 곤란하고, 무역거래를 이용한 자금세탁은 수출자와 수입자 쌍방간에 합의만 하면 가짜 송품장, 가 계약서 등을 통해 비교적 쉽게 언제든 가능하고, 국가의 수출지원정책(간소화된 수출입통관 절차, 무역지원금융 등)을 악용하고, 전문성이 강하고 절차가 복잡한 무역·국제금융을 이용함으로 적발이 쉽지 않을 거라는 점을 노린 거라 본다.
WTO 체제하에서 2000년대부터 세계무역거래가 격증하고, 자금세탁, 부패, 사기, 뇌물 등 무역금융 범죄도 급증하자 무역기반 자금세탁(Trade- Based Money Laundering)에 대한 국제적 관심과 논의는 증대했다.
2006년, FATF(Financial Action Task Force)는 무역기반 자금세탁(TBML) 방지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범죄자금을 위장하고 자신의 불법근원을 정당화하기 위한 시도로 ①금융시스템을 이용하고 ② 무역거래를 이용하여 ③자금과 물품을 이동하는 과정이 무역기반 자금세탁(TBML)이라고 정의했다. FATF는 이에 더하여 무역거래를 통해 “테러자금 등 범죄자금을 조달" 하는 범위로까지 개념을 확장했다(2008년).
FATF는 2007. 2월 총회에서 무역기반 자금세탁에 대한 세가지 과제를 들었다. ①무역기반 자금세탁에 대한 인식 제고 ②무역정보의 수집과 활용의 표준화 ③무역정보를 관련기관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교환하는 것 이다.
또 2007. 6월 총회에서는 무역금융세탁 단속을 위한 기본 6대 원칙을 공표하였는 바, ①기존 자금세탁 교육 프로그램에 TBML을 포함할 것 ②FATF가 발간한 TBML 보고서를 활용할 것 ③국내 세관당국과 기타 자금세탁 단속기관간 협력 강화 ④공인된 방식으로 무역정보를 수집 · 교환하고, 정보보호법령을 준수할 것 ⑤무역정보 교환 국제협력채널 구축 ⑥합법무역활동을 저해 하지 않을 것 등이다.
2016. 9월, 중국 항저우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 2017년 당시 13개 글로벌 은행들의 연합체였던 볼프스베르크그룹(Wolfsberg Group) 회의 등에서도 각국 정부와 기업에 무역금융에서 발생될 수 있는 자금세탁의 단속과 예방을 촉구했다.
2017. 1월 세계관세기구(WCO)는 불법자금 세탁 단속에 대한 Action Plan을 발표하였는데, 불법자금세탁 수법으로는 인보이스 사기, 돈세탁, 이전가격 허위표시, 탈세 등 다양하나 이 중 인보이스 사기를 우선적으로 다룰 예정이라 하면서, 그 이유로는 불법무역거래의 80% 가 역외로의 자금 이동을 위한 인보이스 사기인 것으로 드러났기(국제금융청렴조사위원회 보고서) 때문이라고 하였다.
2017. 8월 FATF 신임 의장은 인터뷰에서 TBML 이 가장 중요한 Agenda 라고 밝혔고, 2017.10월, WCO 사무총장은 무역기반 자금세탁은 WCO 사무국 6대 우선순위 중 하나라 하였다.
이와 같은 국제적 흐름 속에서 2014년 10월 우리나라에서 3조2천억 규모의 무역기반 자금세탁 범죄행위가 세관 수사관들의 조사에 의하여 세상에 드러났다.
외국의 유명 홈쇼핑등에 팔려 나간 것으로 알려졌던 매출 90%가 수사결과 가짜였다.
M사가 당시 수출했던 상품은 ‘안방극장 PC(Home Theater PC)’이라고, HT PC를 티브이(TV)에 연결해 쓰는 동영상 재생기기로 스마트TV가 대중화된 현재는 상품성이 거의 없는 제품이다.
2007년 즈음 M사는 일부 제품에 하자가 발생해 대규모 반품이 들어오자 자금난 때문에 애를 먹다가, 회사 대표는 반품된 제품을 홍콩의 페이퍼컴퍼니에 재수출했다고 서류를 꾸민 뒤 이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자금난에서 벗어났다.
2009년부터는 더욱 대담해져 수출 규모를 더 키우기 위해 용산전자상가에서 8,000원 ~2만원이면 살 수 있는 폐컴퓨터 수준의 상품을 250만원짜리로 부풀렸다.
가짜 수출채권을 근거로 수출환어음을 발행한 뒤 이를 국내 금융권에 매각해 수출대금을 미리 받는 형식으로 사기 대출을 받았고, 어음 결제 만기가 돌아오면 새로 꾸며낸 수출채권으로 재차 대출을 받는 ‘돌려막기’가 주요 수법이었다.
이 회사는 이런 식으로 2009년 1월부터 2014년 7월까지 3,330차례에 걸쳐 Home Theater PC 반제품 120만대를 대당 250만원 정도에 수출하는 것처럼 서류를 꾸며 금융권에서 6,000여억원의 대출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무역거래 기반 자금세탁 범죄는 수출입 무역에 대한 전문성과 실무경험 없이는 적발과 수사가 어렵다. 미국이 2007. 5. 3 발표한 '불법자금세탁 국가전략'을 보면, 출입국/세관 수사청(ICE: Immigration Customs Enforcement) 산하에 무역정보분석기구를 설치해 무역정보 교환과 분석을 활성화하겠다 했는데 우리 관세청에서도 눈여겨 보아야 할 과제라 생각한다.
[프로필 ] 이대복 (사)한국 FTA 원산지연구회 이사장
• 現 동국대학교, 세계관세기구(WCO)에서 자금세탁방지론(Anti-Money Laundering) 강의
• 저서 : ‘한국세관의 역사(2009년, 동녘)’
• 호서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박사
• 2005년 홍조근정훈장 수상
• 1994년 WCO 사무총장상 수상
• 2010.06~2011.07 관세청 차장
• 2008.09~2010.05 인천공항세관 본부세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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