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가 부른다] 연해주의 고려사람

2025-12-11

‘고려사람’이라 하면 19세기 중·후반 무렵에 한반도로부터 건너간 조선 동포들을 일컫는다. 주로 대기근이 심했던 함경도지역 사람들이 넘어가다 보니 대부분 고려인의 말투는 함경도 방언에 가깝다. 19세기 말에는 경상도지역에서 넘어갔는데 이들이 사할린지역에 터전을 잡고 살다 보니 지금까지도 사할린지역에는 경상도 억양을 가진 고려인들이 많다.

연해주 지역을 고향으로 인식하던 고려인은 1937년 스탈린의 민족 정책 일환으로 벌어진 비극적인 고려인 강제 이주로 블라디보스토크 등에서 출발해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통해 노보시비르스크를 거쳐 중앙아시아로 향했다. 열악한 환경과 극심한 추위, 배고픔 속에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지만 강인한 정신력과 성실함으로 주로 농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중앙아시아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궜고, 그 지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기까지 이른다.

그러나 떠나온 고향을 잊지 못해 귀향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숫자는 무려 수만 명에 달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불과 25년 전까지만 해도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파르티잔스크 등에 자리 잡고 집단공동체를 이루고 살며 추석, 설 같은 우리 고유 명절과 전통 제사, 절기를 지키는 것은 물론, 같은 민족끼리 혼인하는 문화가 지속돼 왔다. 그러나 고려말을 사용하던 사람들의 고령화와 한국 정부의 관심이 멀어지면서 그동안 지켜왔던 고려문화가 2025년 현재 거의 사라졌으며 일부 학교와 학원, 한국문화원 등에서만 겨우 그 맥을 잇고 있다.

과거에 농업으로 돈을 많이 벌고, 그 돈으로 상업을 일으켜 경제적인 기반을 닦은 고려인들이 점차로 농업에서 손을 떼게 되자 연해주의 농산물은 그 질과 공급량의 수준이 현저하게 저하됐다. 현재, 연해주에서 유통되는 농산물은 주로 중국으로부터 수입되고 중앙아시아로부터 유입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러시아의 산업은 한마디로 원료를 수출하고 완제품을 수입해서 유통하는 구조라 잘라 말할 수 있다. 제조업과 농업을 기피해 엄청난 물량의 원유를 수출하면서도 대부분의 석유화학제품을 수입해다 쓴다. 농사를 짓지 않다 보니 농산물은 물론 농산 가공 식품도 수입해다 먹는다. 소와 돼지는 키우는데, 축산 가공 산업이 없다. 질 좋은 수산자원이 엄청나지만 수산 가공업이 없다. 물론,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타 국가에 비해 많은 자원이 있으나 상대적으로 제조·농업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러시아인들의 성향은 투자를 싫어한다. 몇 년 뒤에 투자원금을 회수하는 구조를 태생적으로 기피한다. 러시아의 최대 상업항인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가는 원자재는 엄청나다. 연해주는 이런 원자재 운송과 보관업, 그를 위한 시설의 건설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사는 지역이다. 게다가 풍부한 삼림과 지하자원, 수산자원까지 있다. 우리는 이런 점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연해주는 러시아 전체면적의 약 0.92%를 차지하며 러시아의 남동부, 극동 남부에 위치하고, 북쪽으로는 하바롭스크 지역, 서쪽으로는 중국, 남서쪽으로는 북한, 그리고 남쪽과 동쪽으로는 동해와 접하고 있어 한반도와 매우 가깝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의 방문으로 공식적인 물꼬를 튼 이래, 2004년 반기문 당시 외교부 장관과 2011년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 2012년 이명박 대통령 방문에 이어 2017년 문재인 대통령, 2018년 송영길 북방경제협력위원장 등 대한민국 수반과 고위공직자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연해주 쪽에서는 2011년 울레이스끼 부지사, 2013년 미클루셉스키 주지사의 한국 방문을 비롯, 2018년 박다넨꼬 부지사의 방한까지 한-러 간 유대는 COVID-19, 우크라이나 사태 전까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최근, 미국과 러시아의 적극적인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 힘입어 2025년 종전을 기대하는 민간단체와 러시아 사업 관련 회사들의 움직임이 활발하고 공식적으로도 한-러 간 우호 관계가 되살아날 움직임들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연해주 내 고려인 우호 단체들도 시동을 걸고 있는 모양새로 민간차원에서 본국의 단체들과 다각적인 협력을 준비하고 있다. 경제 포럼 및 보건·의료 포럼, 문화·예술 관련 포럼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연해주의 고려인 민간단체들도 화답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움직일 때다. 한반도와 매우 가깝고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사랑하며 제조와 농업이 거의 없는 작지 않은 지역이 우리 눈앞에 있다. 이제 곧 공식적으로 우호적인 교류를 회복할 것이다. 이런 시기에 북극항로의 중심 지역인 울산에서 바라보는 연해주는 더 특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김승율 시베리아포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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