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T가 단행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갑자기 영업부서에 내몰린 기술직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이 위태로운 상태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10명 중 6명은 ‘우울증 위험군’이었고 8명은 ‘불안장애 위험군’이었다. 지난해 구조조정 이후 4명의 노동자가 심장마비로 돌연사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이어지자 노조 측에서 긴급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다.
공공운수노조 방송통신협의회와 KT 새노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은 9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KT 구조조정과 노동자 자살, 긴급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구조조정을 통해 노동자들을 대거 전출시킨 조직 ‘토탈영업 TF’와 기존 영업직 노동자 302명을 대상으로 지난 5월30일부터 6월4일까지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토탈영업 TF’ 노동자의 64.8%는 우울증 위험군, 45.7%는 수면장애 위험군에 속했다. 기존 영업직군 노동자들 중에선 36.4%가 우울증 위험군, 22.2%가 수면장애 위험군이었다. 정신건강 위험도가 기존 영업직의 2배 수준이다. 불안장애의 경우에는 두 집단 모두 88.1%가 위험군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10월 KT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2800명은 희망퇴직하게 하고, 1723명은 신설 자회사로 전출시켰다. 퇴직과 자회사 전출을 모두 거부한 2500여명은 ‘토탈영업TF’로 배치됐는데 이들 대부분은 영업 업무를 해 본 적이 없는 기술직 노동자들이었다
구조조정 이후 토탈영업 TF로 강제배치된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을 상시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용 상태가 매우 불안하다’를 1점, ‘전혀 불안하지 않다’를 4점으로 놓고 자신의 점수를 매기게 했더니 토탈영업 TF 노동자들의 평균 점수는 1.7점으로, 중간값(2.5)보다 크게 낮았다. 기존 영업직군 노동자의 고용불안 점수는 2.1점이었다. 전출 이후 업무환경도 매우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의 경험을 묻는 질문에 ‘무리한 요구, 빨리하라는 닦달’(55.6%), ‘무원칙적인 지시’(50.7%), ‘인격 무시’(46.4%), ‘책임 떠넘기기’(42.1%), ‘차별 혹은 왕따’(30.1%), ‘필요한 정보와 물품 등을 제공하지 않음’(39.1%) 등의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구조조정으로 토탈영업TF로 배치되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정병수 노동자의 유서도 공개됐다. 고인은 유서에 “너무 힘들다.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무슨 잘못을 했길래 죄인이 되어야 하는가”라며 “이런 말도 안 되는 교육 받으면서 자괴감이 든다. (중략) 난 한 번도 내 삶의 터전에서 소홀히 한 적이 없다. (중략) 난 인정할 수가 없다. 내 삶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썼다.
고 정병수씨의 장인은 이날 간담회에서 “사위는 재택근무 중에도 회사로 출근할 만큼 회사를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이었다”면서 그런 사위에게 회사는 어느 날 갑자기 ‘3억 줄 테니 나가라’며 구조조정을 통보했다. 거절하니 괴롭힘과 압박이 시작됐다”고 전했다. 이어 “가장을, 가족을, 사람을 이렇게 내쫓고 죽음으로 내모는 게 과연 정상인가”라고 되묻고 “죽음 이후에도 회사는 무책임하다. 도대체 그 죽음의 이유가 뭐냐고 묻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KT의 구조조정 단행 이후 사망한 노동자는 4명에 이른다. 명예퇴직을 택했던 노동자가 1주일 만에 심장마비로 돌연사했고 올해 1월, 5월엔 토탈영업 TF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다. 신설 자회사로 전출된 노동자도 지난달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