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중국은 홍콩을 어떻게 보는가. 그 답이 궁금하다면

2024-10-28

구룡성채의 원래 이름은 구룡채성이다. 九龍寨城. 채는 울타리 채 자이다. 구룡에 있는 울타리로 쌓은 성이란 뜻이다. 현대에 이르러 좀 더 알기 쉽게 구룡성채, 九龍城砦로 바뀌었다. 구룡반도에 있는 일명 마굴(魔窟), 최악의 슬럼가였다. 1993년에 철거돼 지금은 공원으로 돼있다. 국가의 법, 사회의 공권력이 통하지 않는 그야말로 치외법권 지역이었으며 갱단 조직인 삼합회가 운영했던 곳이다. 그 얘기를 다룬 것이 바로 ‘구룡성채 : 무법지대’이다.

영화는, 겉으로 보기엔 삼합회와 또 다른 특정 세력인 범죄 조직과 그 우두머리들의 치열한 권력 다툼을 그린 내용처럼 꾸며져 있다. 실제로 홍콩 영화 특유의 과도한 권법 액션과 잔혹한 폭력의 장면으로 점철돼 있다. 영화 마케팅도 과거 1980년대 홍콩 누아르를 추억하거나 여전히 추앙하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라는 식으로 짜여 있다. 영화의 겉만 보면 좀 그런 측면이 있다.

그러나 속 내용이 겉보다는 좀 더 깊다. 어마어마한 의미까지는 아니어도 홍콩인들이 지금의 홍콩, 더 나아가 중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아니면 그 반대로 지금의 중국 시진핑 정부가 홍콩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들여다 볼 수 있게 해 준다. 홍콩 사태, 곧 홍콩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서 처참하게 탄압된 지 만 5년이 지난 시점이다. 영화는 늘, 사회와 역사의 문제에 있어 자유롭지 못하다.

구룡성채가 지독한 슬럼이 된 데에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청 말기인 1898년 영국이 아편전쟁 이후 홍콩을 무력으로 점령할 때 청의 허울뿐인 방어선의 하나가 이곳 구룡성채였다.

이후 이 지역은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 그곳을 탈출한 본토 난민들이 불법적으로 체류하며 자신들만의 국가 아닌 국가를 구축한 곳이다. 당연히 홍콩 원주민들과의 갈등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곳이었으며 이후에도 각종 난민들의 본거지가 됐으며 그 와중에 범죄조직인 삼합회가 독자적으로 관할 운영하게 된 곳이다.

영화 ‘구룡성채 : 무법지대’는 이 지역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전설의 고수 3인의 얘기부터 시작된다. 극중 관계는 다소 복잡해서 오프닝 시퀀스의 자막 설명을 잘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과거의 주요 인물은 사이클론(고천락)과 레이, 찬 짐(곽부성)이다. 찬 짐은 레이 갱의 최고 살인 병기이다. 셋은 형제 관계를 맺을 만큼 가까운 사이였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이클론은 다른 조직 ‘추’에 붙었고 곧 벌어진 피 터지는 싸움에서 사이클론은 추와 타이거라는 또 다른 일파와 손을 잡고 레이 파를 제거한 후 구룡성채를 접수한다.

이 과정에서 사이클론과 찬 짐은 (전설에 따르면) 7일의 낮과 밤을 싸운다. 그 전장(戰場)의 흔적은 현재까지 구룡성채의 성지로 남아 있다. 사이클론은 이후 추 밑에서 성채 치안위원장으로 사실상 구룡성채를 지배한다. 바깥에는 또 다른 삼합회 조직인 미스터 빅(홍금보)이 호시탐탐 구룡성채의 지배권을 노리는 중이다.

문제는 그다음 세대에서 다시 재현된다. 추는 자신의 일가족을 무참하게 살해한 찬 짐에 대한 복수심을 벌이지 않고 있으며 자신 역시 찬 짐 일가의 대를 끊겠다고 결심해 왔다. 그런데 찬 짐의 아들이 살아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다. 그가 바로 찬 록 쿤(임봉)이다.

그는 어찌 된 일인지 베트남 난민이 돼 구룡성채로 들어온 인물이다. 찬 록 쿤이 찬 짐의 아들인지 처음엔 몰랐던 사이클론은 그의 보호자가 되고 자신의 심복인 신이(유준겸)를 붙여주기까지 한다. 찬 록 쿤과 신이, 사이클론의 또 다른 후계자 급인 AV(장문걸)와 타이거 조직의 1인자 십이소(호자동), 그렇게 4인은 형제 관계의 연을 맺기 시작한다.

갈등의 시작은 조직의 우두머리 급인 추 조직과 동조자 타이거 파 보스가 찬 록 쿤의 살해를 명령하고 이를 사이클론이 거부하면서 시작된다. 사이클론의 실력을 감당할 수 없었던 추는 바깥의 삼합회 조직 미스터 빅을 끌어들인다. 미스터 빅 수하에는 킹이라는 살인귀가 있다. 구룡성채는 곧 피바다가 되기 시작한다.

추 조직과 오랜 동지 관계를 맺어 왔던 사이클론은 찬 록 쿤을 죽이라는 지시를 거부하면서 이런 얘기를 한다. “우리 세대의 문제를 애들한테 떠넘기지 말자.” 사이클론은 과거 찬 록 쿤의 아버지 찬 짐을 죽이면서 그에게 아들을 살려주고, 돌봐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사이클론이 레이를 배신한 것은 레이 때문이었지 찬 짐 때문은 아니었으며 그는 자신이 찬 짐을 죽이게 된 일을 이후 내내 뼈아프게 후회하며 사는 것처럼 행동한다.

우리 세대의 일은 우리 세대에서 끝내자는 말은 홍콩의 지난 역사를 생각할 때 묘한 여운을 남긴다. 사이클론은 찬 록 쿤이 찬 짐의 아들인 것을 알게 된 후 그에게 구룡성채를 떠나 멀리 도망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찬 록 쿤은 사이클론에게 돌아오려 한다.

그는 말한다. “이곳에서 살고 싶어요. 이곳에서 살다가 죽고 싶어요.” 찬 록 쿤의 이 대사 역시 기묘한 기시감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중국 정부는 어쩌면 홍콩과의 오랜, 굴곡진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 세대의 일은 우리에서 끝내고’ 새로운 세대,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홍콩에서 낳고 자란 홍콩인들이 홍콩에서 살고 홍콩에서 죽기를 바랄 만큼 홍콩에 대한 애정이 높고 그것을 잘 알지만(사이클론), 강고한 국가주의 원칙에 따라 소개와 이주가 이루어져야 한다(추)고도 생각한다.

중국 정부는 그 가운데에서 과연 현명한 방법은 무엇인가를 놓고 고민에 빠져 있음을 보여 준다. 영화 ‘구룡성채 : 무법지대’는 중국이 홍콩(인)의 문제를 바라보는 일단의 시각을 반영하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중국 정부는 홍콩 반환 전의 홍콩을 구룡성채=슬럼=치외법권지대의 아수라 구렁텅이였을 뿐이라고 강조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구룡성채 같은 이미지의 홍콩이 1997년 중국 반환 이후 말끔하게 정상화됐다는 것이다. 아마 그 점 역시 강고한 전체주의적 입장의 현 중국정부가 이 같은 누아르 영화의 부활을 용인한 이유일 수 있다.

구룡성채를 과거의 이미지 그대로 복원해 구현한 미니어처, CG, 세트의 공학이 놀라운 작품이다. 중국 영화의 기술력이 일취월장을 넘어서서 위협적인 수준이 됐음을 보여 준다. 극중 인물들이 구사하는 홍콩 무술 액션의 호쾌함, 그 속도감과 정밀함의 미학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홍콩 액션의 영화지만 한편으로는 홍콩의 씁쓸한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픈 작품이기도 하다. 홍콩은 홍콩인에게. 이제 그런 말은 결코 들을 수 없는 메아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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