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에 잡아먹힌 마음들

2025-11-07

보름 전쯤 친구를 만나 얘길 나눴다. 점심으로 편의점 샌드위치를 먹었다는 내게 그런 거로 밥을 때우냐며 잔소리하는 친구 얘기를 듣고, 요즘 일감이 많지 않아 물류 알바를 지원했다는 친구에겐 그게 참 힘들다던데 다른 일은 어떻겠냐는 걱정을 건넸다. 서로 답 없는 얘기란 건 잘 알아서 곧 웃어넘기고 다른 주제로 화두를 넘겼다.

듣는 이도, 말하는 이도 안다. 편의점 음식이 썩 좋은 끼니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게 아니면 밥을 챙길 시간과 사정이 만만치 않다는 것도, 친구가 간다던 물류센터가 산재를 많이 낸 일터라는 걸 알면서도 생계를 벌충하려면 요즘 그만한 곳이 없다는 것도. 다만 각자가 살면서 보고, 듣고, 알게 된 범위에서 상대를 근심해줄 뿐이다. 서로 위해주는 관계니까. 우리의 대화엔 ‘네가 알면 뭘 아느냐?’, ‘경험은 해봤느냐?’, ‘자기 일 아니라고 함부로 말한다’는 날 선 말은 없었다. 어떤 마음과 표정으로 얘기하는지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으니까.

문제에서 답을 찾아보려는 저마다의 마음을 쉽게 규정하고 소비하는 것이 그사이에 놓인 모든 공백을 모두 지워버릴 뿐이다. 대체의 갈등이 그러했듯.

내가 군 인권단체에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들어본 소리 중 하나가 “군대는 갔다 왔냐”는 말이다. 여기엔 ‘안 갔다 왔으면 네 도움을 신뢰하기 힘들다’는 무언의 메시지가 깔려 있다. 나는 현역병으로 만기 전역을 했지만 그럴 때면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조심히 이렇게 답한다. ‘선생님이 군대에서 경험한 일은 제가 잘 모를 수 있지만, 아무래도 군대에서 벌어지는 오만 이야기를 듣고 사는 걸 직업으로 삼은 제가 아는 경험은 좀더 많을 것 같아요.’ 100명이 경험한 대한민국 군대는 하나의 군대지만, 또 100개의 군대이기도 하다. 나는 군 생활 중에 맞아본 적이 없어 피해자의 마음을 오롯이 알 순 없지만, 아무래도 맞은 사람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다른 사람보다 잘 아는 축에 속할 것이다. 경험해봤다고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고, 많이 경험해봤다고 다 알 수 있는 것도 더더욱 아니다. 그래서 자격을 판단하는 데는 대화가 앞서야 하고, 대화가 이뤄지는 데는 상대에 대한 인정이 앞서야 한다.

요즘 쿠팡 새벽배송 금지 문제가 화두다. 택배노조가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에서 택배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대책으로 0시부터 5시까지 배송 금지안을 제시하면서 시작된 논쟁이다. 어느덧 논의는 ‘새벽배송 금지안은 조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민주노총의 컴컴한 속내’라는 어느 정치인의 주장을 씨앗 삼아 전쟁이 돼버렸다. ‘쿠팡 기사들은 찬성하는데 민주노총이 왜 난리냐’, ‘현장에서 일해본 적도 없는 것들이 설친다’, ‘새벽배송은 원래 불필요했다’, ‘새벽배송은 노동자에 대한 살인행위다’. 저마다의 경험이 뒤엉킨다.

이중에 그 회사 직원이건, 노동조합이건, 정치인이건, 뉴스로 소식을 접한 사람이건 반복되는 과로사의 대책을 고민하고 말할 자격이 될 경험이란 대체 무엇인가? 저마다의 경험에 절댓값을 부여하는 이들과 함께 문제는 점점 본질에서 멀어진다. 새벽에 일하는 것이 노동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그 일자리와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다 현실이고 사실이다. 다만 문제에서 답을 찾아보려는 저마다의 마음을 쉽게 규정하고 소비하는 것이 그사이에 놓인 모든 공백을 모두 지워버릴 뿐이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져 온 대체의 갈등이 그러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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