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토류의 위력은 또 한번 입증됐다. 협상 테이블에 앉은 미·중이 희토류에서 타협점을 찾으면서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 제한을 해제하는 대신 미국은 중국 유학생 비자 취소 조치를 풀기로 했다. 희토류를 전기차 핵심 소재로 쓰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한숨을 돌렸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는 평가다.
1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은 자동차를 비롯한 미국 제조업체에 대한 희토류 수출 면허를 6개월 한정 복원하기로 미국과 합의했다. 영국 런던에서 열린 9~10일 2차 무역협상에 따른 조치다. 아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최종 승인이 남았지만, 세부 내용이 확정되면 미 완성차 업체엔 단비가 될 전망이다.
중국은 지난 4월 4일부터 희토류 7종과 희토류로 만든 자석을 수출할 때 정부 허가를 받도록 했다. 미국 외 다른 국가도 희토류 수출 규제 대상국이지만 주요 타깃은 미국이었다. 미 완성차 업계를 대변하는 자동차혁신연합(AAI)은 지난달 9일 “희토류 공급 부족으로 미국 내 공장 가동을 멈출 수 있다”는 내용의 비공개 서한을 트럼프 행정부에 전달했다.
중국, 전기차 핵심 ‘영구자석’ 원자재 독점생산
컨설팅업체 알릭스파트너스에 따르면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수출의 70%, 정제능력의 85%, 관련 합금 생산의 90%를 차지한다. 중국 정부는 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희귀한 중(重)희토류 7종(사마륨, 가돌리늄, 테르븀, 디스프로슘, 루테튬, 스칸듐, 이트륨)을 수출규제 대상으로 선택했다.

희토류는 전기차 구동 모터, 배터리, 센서 등에 광범위하게 쓰인다. 이 가운데 디스프로슘(Dy)은 전기차 구동모터 부품인 영구자석의 핵심 소재다. 영구자석은 네오디뮴(Nd) 20~30%, 디스프로슘 10%, 철 60~70%, 붕소 1% 등으로 구성된다. 디스프로슘은 고온에서 자성이 약화되는 경(輕)희토류인 네오디뮴의 특성을 보완하고, 영구자석의 자성을 강화하는 데 쓰인다. 베트남 등이 대체 생산하는 네오디뮴과 달리 디스프로슘은 중국에서만 생산된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디스프로슘 국제가격은 중국의 규제 직전인 4월 3일 ㎏당 230.5달러에서 지난 10일 277.5달러로 20.4% 올랐다. 김태훈 한국재료연구원 박사는 “구동 모터의 고성능화, 전기차의 경량화를 위해서는 디스프로슘이 필수적이어서 전기차 업계도 함량을 늘리고 있다”며 “국내외 연구진이 디스프로슘을 쓰지 않는 영구자석 개발에 나섰지만, 아직 성과가 뚜렷이 없어서 중국의 수출 제한 조치는 매우 위협적”이라고 말했다.
40년 전부터 준비한 中…“대체 기술 개발해야”
희토류는 중국만 보유한 것만은 아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중국의 희토류 매장량은 4400만톤(t)으로 세계 1위였지만, 베트남(2120만t)·브라질(2100만t)·러시아(1000만t) 등 다른 나라에도 매장량이 적지 않다. 미국도 180만t의 희토류 매장량을 보유했다.
문제는 희토류를 정련·가공하는 기술력과 환경규제다. 각종 불순물이 섞여 있는 희토류는 크게 ‘채굴·분쇄→용해·침출→반복적 추출(원소 간 분리)→정제(고체화)’의 네 단계를 거친다. 중국 정부는 1986년부터 ‘광산자원법’을 통해 희토류 독점을 위한 기술을 발전시켰고, 방사능·폐수 문제도 규제 완화로 해결했다. 반면에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환경오염 문제 탓에 희토류 생산을 후진국에 맡겨왔다.

최근에는 희토류 중요성이 커지면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와 스탈란티스는 2023년 희토류를 사용하지 않는 영구자석 생산을 위해 3300만 달러를 공동투자했다. 현대차·기아는 연세대와 손잡고 희토류 소재 대체 및 재활용 기술 확보를 위한 공동연구실을 지난해 설립했다. 독일 파워트레인 제조업체 ZF는 희토류를 사용하지 않는 구동 모터를 최근 개발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대체형 구동 모터는 소음·발열이 심하고 제조비용이 비싸 아직 상용화하기엔 시기상조”라면서도 “중국의 희토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대체 기술을 보유하는 것이 산업적으로 안전하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