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산책] 대중문화의 힘과 돈의 유혹

2024-10-11

문화에 대해서 우리는 뜻밖에 많은 편견과 오해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문화를 예술적 고급문화와 상업적 대중문화로 구분하고, 둘 사이에 높낮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래서 대중음악, 즉 유행가나 텔레비전 드라마, 코미디, 만화 같은 대중문화를 하찮게 낮잡아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편견이고 잘못된 생각이다. 이런 식의 이분법은 매우 위험하다.

추구하는 방향이나 존재 방식이 다를 뿐이지, 높고 낮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깊이와 넓이의 차이, 또는 돈과 정신적 가치의 차이 같은 것이다. 개인적 취향의 차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무엄하게 말하자면,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아니면 안 듣는 사람이 이미자나 조용필, 나훈아 노래를 즐기는 사람보다 훌륭하고 행복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가는 각자의 인생관이나 취향의 문제일 따름이다. 물론, 순수성과 예술성 같은 가치를 절대 기준으로 삼는 평론가나 학자의 시각은 존중받아야겠지만, 대중의 시대정신이나 풍속사 등은 다른 문제다.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 특히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으로만 따지면, 대중음악이 클래식 음악보다 훨씬 넓고 크고 강하다. 유행가를 대중(大衆)음악이라고 한다면, 클래식 음악은 소중(小衆)음악쯤 되려나?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동서양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유행가의 힘은 막강하다. 대중들의 삶과 하나로 어우러져 함께 울고 웃으며 그들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평생 가는 아련한 추억을 만들어주고, 다른 이의 삶에 공감하도록 이끌어주고, 아주 때로는 역사의 물길을 바꾸기도 한다. 특히, 한 개인의 인생 굽이마다 마치 암각화 같은 굵은 무늬를 새긴다. 그래서 어떤 노래를 들으면 자연스레 지난 시절 한 세월의 추억이 오롯이 되살아난다. 이것이 유행가의 힘이다.

한류의 가장 앞자리에 K-팝이 있고, 가수 나훈아의 은퇴가 장안의 화제가 되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의 현대사를 살펴봐도, 문화가 도약하는 길목마다 대중문화, 유행가가 있었고, 배우나 가수 같은 광대들이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인류가 그동안 만들어 듣고 부르고 울고 즐긴 노래는 몇 곡이나 될까? 저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고 많을 것이다. 때로는 큰 사랑을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저속하네 퇴폐적이네 표절이네 왜색이네 등등 온갖 욕을 먹고 푸대접을 받아가며 무수히 태어나고 사라져갔다.

그 많은 노래 중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오래도록 남는 노래는 극히 일부다. 가수나 작곡가 중에 엄청난 인기를 누린 이는 제법 많아도, 예술가 대접을 제대로 받는 이는 많지 않다. 대부분은 상품으로, 그야말로 한때의 유행품으로 소비되어 사라지고 만다. 돈의 잔인한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다.

예술의 생명력을 결정하는 요인은 매우 다양하겠지만, 오늘날 가장 결정적인 것은 돈이다. 오늘날 세상 모든 것이 자본의 논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돈이 왕이다. 안타깝게도 예술도 마찬가지다. 대중문화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잔혹한 현실에서 돈의 유혹을 아예 뿌리치거나, 돈의 횡포를 멋지게 이겨낸 예술가들을 우리는 존경한다. 음악상을 사양하고 방송 출연을 하지 않는 조용필, 재벌의 정중한 초청에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공연장에 표를 사서 오시라”고 응수한 나훈아, 군사정권의 실세가 내민 백지수표를 “논에 풀 뽑으러 가야 한다”며 뿌리친 김민기….

김민기의 대표작인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4000회로 돌연 공연을 중단했다. 계속 관객이 몰려들어 흥행이 잘 되는 공연을 왜 중단하느냐고 의아해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김민기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돈 안 되는 아동극에 전념했다.

“돈 되는 일만 하다 보면 돈 안 되는 일을 못 할 것 같아서….”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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