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우리] 트럼프 2.0과 한·러 관계

2025-05-08

미, 대중견제 올인… 러에 우호

한·러 관계도 동반 회복 가능성

문화·사회·인적 교류 등 늘리고

새 정부서 대화·협력 재개 필요

2025년은 한국과 러시아가 수교한 지 35주년이 되는 해이다. 수교 이후 많은 부침을 겪은 한·러 관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하 러·우 전쟁) 발발 이후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변화무쌍한 한·러 관계는 상당 부분 미·러 관계와의 동조화 현상에서 비롯된다.

김대중·노무현정부 시기 에너지·물류 부문을 비롯한 한·러 협력의 진전은 9·11 이후 미국이 선포한 ‘테러와의 전쟁’에 푸틴의 러시아가 동참함으로써 형성된 미·러 협력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이명박정부는 러시아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선언하고 ‘한·러 대화’를 출범시키는 등 양국 간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시켰다. 그러한 한·러 관계의 개선에는 당시 미국과 러시아 간 외교관계의 재설정, 즉 ‘리셋 외교’의 분위기가 일조했다.

미·러 관계의 호전과 상관없이 추진된 대러 협력 프로젝트도 있었으나 용두사미로 끝났다. 박근혜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북한의 4차 핵실험이라는 지정학적 암초를 만나 좌초하고 말았다. 문재인정부는 ‘신북방정책’을 발표해 러시아와의 적극적인 협력을 꾀했으나 그것마저 ‘코로나 19’로 정체되고 말았다. 더욱이 한·러 관계는 2022년 러·우 전쟁으로 급전직하했다. 대한민국은 대러 제재에 동참했고 러시아는 우리나라를 ‘비우호국가’로 지정했다.

이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기가 시작되면서 미·러 관계의 개선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트럼프는 동맹이나 가치 외교보다는 자국 중심의 거래적 외교를 펼치면서 중국 견제에 올인하고 있다. 반면에 러시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의 그러한 입장은 러·우 전쟁 종전 협상 초기에 보여준 그의 친러 행보에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기류 속에서 한·러 관계의 회복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국내는 물론 러시아에서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최근 필자가 만나본 러시아의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한·러 관계의 회복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다만 그들의 한·러 관계 회복 주장에는 서방과 대립하고 있는 러시아의 입장이 배어 있다. 그들은 한국에 대해 ‘중립적’이고 ‘호혜적’인 원칙을 지켜 줄 것을 주문한다. 대러 제재도 걸림돌이다. 그렇게 볼 때 한·러 관계가 개선될 가능성은 있지만 러·우 전쟁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최근 북·러 관계의 급진전은 한·러 관계 복원에 상당한 리스크로 등장했다. 지난달 26일 러시아는 쿠르스크 점령지 탈환에 있어서 북한군의 역할을 확인했다. 이틀 뒤 북한도 관영 매체를 통해 쿠르스크 전투에서 북한군의 ‘중대한 공헌’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이는 지난해 6월에 체결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 이후 양국 관계가 ‘실질적 동맹’ 관계임을 말해준다.

이처럼 한층 더 복잡해진 한·러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우선 북한과 러시아 간 군사협력 등 대한민국의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한·러 관계를 북·러 밀착 문제와 경직되게 연계시키는 접근은 현명하지 못한 전략이다.

양자 관계의 회복을 위해 우선 문화·사회부문의 교류와 관광 등 인적 교류의 활성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러·우 전쟁 이후 단절된 직항 노선의 재개가 급선무다. 또한 식품, 의약품, 화장품 등 비제재 품목의 교역을 활성화하고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 부문의 협력 확대와 러·우 전쟁 이후 철수한 한국 기업들의 복귀를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북극해 개발 및 북극 항로 참여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6·3 대선 이후 들어설 신정부는 러시아와의 특사 교환 타진 등 정부 간 대화와 협력 재개에 나서야 한다. 러시아는 좋건 싫건 우리의 안보와 국익을 위해 손을 잡아야 하는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장덕준 국민대 명예교수·유라시아학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