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으로 빚어낸 우직함의 미학, 허윤재 해금독주회 ‘여민락, 파생’이 지난 11월 22일, 서울 ‘민속극장 풍류’에서 올린 공연을 성공적 마쳤다.
우직한 정공법(正攻法)이 담긴 무대 ‘여민락, 파생’은 해금 연주자가 최소의 무대 장치 사이에 앉아 다른 것 말고 해금 연주를 오롯이 보여주었다. 후면의 스크린은 스펙터클 대신 사료(史料) - 고려사 악지(樂止)의 해금에 대한 언급에서부터 공연의 주제가 되는 ‘여민락’과 관련한 기록들까지 – 그리고 연주되는 음악이 적힌 악보(정간보)라는 두 종류의 텍스트만으로 꾸려졌다. 팸플릿 역시 여민락에 대한 설명과 정간보 전체를 수록하는 데 할애되었다.
이날 공연장을 찾은 대부분의 관객들은 공연 중간 혹은 레퍼토리 사이사이 팸플릿을 펴 해설된 작품 의도를 파악하려는 대신 연주자의 몸짓과 그 뒤에 놓인 정간보의 흐름 자체를 쫓는데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시간여에 걸친 ‘여민락’ 기반 창작이 해금 독주의 형식으로 새로이 화하여 관객에 전달되었다. 기악 합주곡으로서의 원작을, 조선 전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관련 악보들을 참고하여 독주곡화한 것이다. 결국 '해금'과 '여민락'이라는 두 단어가 이 공연의 주요 키워드가 되고, 그와 관련된 시각-청각 텍스트들만을 무대에 남기는 전략이 채택되었는데, 이러한 전략은 해금이라는 악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로 관객의 오감을 휘어잡아내는데 성공적이었다.
'정악류' 해금 연주가 지닌 다양한 주법의 모든 것을, 방해하는 요소 없이 감상하고 사유할 수 있도록 한 셈이다. 여민락(엄밀히 말하면 복수의 '여민락들')의 (공연 제목이 표방한) '파생'에 대한 후자의 키워드에 대하여 친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도, 집중도 있는 연주와 이를 둘러싼 설명적 사료 텍스트를 통하여 해금이 지닌 사적 가치와 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기회로 다가왔을 것이다.
박종현 전통음악 평론가는 “이번 공연은 여민락 기반의 파생-창작에 대한 메시지의 전달에 있어서는 아쉽지만 완연한 성공으로 볼 수는 없다. 창작물 자체의 문제 라기보다는 창작물 공연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창작론 혹은 창작 어법에 대한 진술이 어떤 방식으로든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애초부터 직관적인 감상을 통한 전달을 의도한 편곡-기획이 아니라 지극히 ‘학구적’인 프로젝트로 고안된 것이기 때문에 그 고안의 방식이 전달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수이 공연성을 잃을 뿐 아니라, 나아가 작품이 건네어져야 할 창작적·이론적 담론계에 명징한 메시지를 던지지 못한 채 고립되기 쉽다”고 말했다.
이어 “향악 계열의 풍류악화 된 여민락에 기반하였으면서도 그와 직접적 연관이 불분명한 조선 전기 ‘세종실록악보’ 등의 악보를 왜, 어떻게 참고하고 비교하여 작업의 1-7장 장단 및 템포 구조에 반영하고자 하였는지에 대한 의견, 강조되는 ‘파생’ 및 ‘독주화’ 작업이 어떤 차별화된 기법으로서 구체화되어 적용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 등이 연주 안, 연주 외 연출장치, 혹은 팸플릿 안에서 엄밀하고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꾀부리지 않고 묵묵히'하는 우직함의 미덕 속에서, 지나치게 묵묵하다 보니 꾀가 아예 보이지 않게 된 경우라 느껴 아쉬웠다”고 덧붙였다.
박 평론가는 마지막으로 “이번 공연에서 느낀 아쉬움은 공연의 재연 혹은 이와 관련하여 연주자 허윤재가 직접 언급한 다음 관련 작업(‘단여민락’이라 명명된 작업)의 초연에서 어렵지 않게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본다. 장르를 불문하고 예술 작품의 '리메이크'는 '원본'과의 관계성에 대한 시각을 창작자와 관객·청자가 공유하고 그 병치된 둘 사이를 어떻게 운용하는지 사유하도록 함으로서 쾌감을 만들어내는 장르이다. 과거 속을 흘러 현재에 이른 여민락 텍스트(들)의 다양한 변이형들이 허윤재라는 좋은 기량의 연주자에 의해 어떻게 창조적으로 제고, 재구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지금과 같이 곧은 정공법 안에서 주어질 공간을 마련한다면, 더욱더 생산적으로 정악-창작 나아가 전통 기반 창작의 세계 속에 의미를 던져내는 공연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