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23년 5월 13일 서울중앙지법 민사 30부는 국가가 음향기기 제조업체 A사와 브로커, 군 간부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판결했다. 2016년 정부가 대북확성기 추가도입을 위한 입찰 과정에서 비리를 저지른 관련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패소한 것이다.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진 사건이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8월 비무장지대 목함지뢰 도발을 계기로 북한 전방부대에 대한 심리전 강화 차원에서 고성능 대북확성기 40대를 도입하는 사업 과정에서 터진 현직 대령과 국회의원 보좌관, 브로커, 업자 등이 연루된 군납비리다.
2016년 합동참모본부는 대북 확성기를 추가로 설치하는 계획을 수립했고 그에 따라 관련 기관은 총 40대를 도입하기로 했다. 국군 재정관리단은 확성기 입찰을 공고했고 A사가 최종 낙찰자로 선정됐다. A사는 40대를 납품하는 대가로 총 144억 6500만 원 가량을 지급받았다.
그러나 A사 대표 B씨와 협력사 대표 등이 입찰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입찰 공고 전 사전 정보를 접하고 기관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사업을 수주할 수 있도록 청탁해 입찰 과정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평가기준을 만든 것으로도 드러났다. B씨는 2019년 1월 위계 공무집행 방해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 받았고 A사의 실제 운영자인 C씨도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이에 정부는 A사와 B씨 등의 불법행위로 손해를 입었다며 소송을 냈다. 이들이 입찰을 방해해 공정 경쟁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자체 감정을 요구한 가상 경쟁 가격과 실제 낙찰가액의 차이를 고려해 A사측에 13억 6400만원을, B씨 등에게 7억 8000만 원을 청구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들이 불법행위를 저지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계약조건 미달과 관련한 손해배상에 대해 “계약 조건으로 편입된 ‘가청거리 10km이상’ ‘스피커는 악천후에서도 사용제한이 없어야 한다’등의 문구가 계약서상 확인된다”면서도 “각 문언만으로 A사가 어떠한 기상조건에서도 가청거리를 만족하는 확성기를 납품할 의무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주목할 점은 검찰이 감사원 감사 결과 이후 수사 요청에 따라 수사에 착수해 3개월간 진행한 결과, 현역 국인과 국회의원 보좌관, 브로커, 업자 등 20명을 대거 재판에 넘겼다. 특히 감사원의 ‘대북확성기 전력화 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와 검찰 수사를 통해 해당 업체는 군이 요구하는 ‘가청거리 10㎞’를 충족하지 못하는 불량 대북확성기를 납품한 것으로 드러났다.
업체 자체평가에서 주간·야간·새벽 시간대 중 주간에는 기준에 미치지 못했을 정도였고, 국방부가 실전배치 후 추가로 성능 평가를 해봤는데 역시 정상적으로 운용하기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겨울철 추위와 강한 바람, 지형 등의 요인 때문에 확성기의 방송 내용이 군의 작전 요구 성능인 10㎞에 도달하지 못했다.
납품 과정에서 국군심리전단장(대령) D씨는 통과 기준을 ‘주간을 제외한 야간·새벽 중 1회만 통과하면 합격’으로 변경하는 직권남용을 저질렀다. 입찰 단계에서 국산 부품을 사용한다는 점 덕에 유일하게 기술평가를 통과했지만 검찰 조사 결과 부품 원산지도 모두 수입산이었다.
군 당국은 자체 감사와 검찰 수사를 통해서도 이 같은 문제점이 확인됐지만, 결국 사업을 강행해 북한에 잘 안들리는 불량품 대북확성기 40대 모두가 군에 공급됐다.
입찰 비리와 성능 미달 및 부실 검증 의혹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 들어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 평화로운 회담 분위기 조성 및 군사적 긴장 완화 명분으로 2018년 4월 23일 0시부터 대북확성기 방송이 중단됐다. 고정식 확성는 철거돼 창고에 보관됐고 이동식 장비인 차량도 인근 부대에 주차됐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북측인 지난해 5월부터 32차례에 걸쳐 7000여 개 ‘오물 풍선’을 살포하면서 이에 대응해 6년 만에 재가동된 대북확성기가 군납비리로 얼룩져 납품된 불량품을 그대로 재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군 관계자는 “지난 2016년 감사원과 검찰 수사에서 제품 불량 및 입찰 비리가 확인된 대북확성기를 보관해왔고 지난 6년간 당초 작전요구성능(ROC)에 맞게 개선하는 과정이 없었다”며 “군 지휘부가 지난해 북측의 오물 풍선 도발에 즉각 대응하라는 명령을 하달하면서 가청거리가 기준에 못 미치는 불량 대북확성기를 재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과연 군이 대북확성기 재가동 명분으로 내세운 전방지역 북한군 동요 등 군사적·전술적 성과를 달성하고 있는지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최전방 지역에서 재가동된 대북확성기는 2018년 감사원 감사 결과 불량품으로 판정받은 제품으로,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방송 중단·철거돼 창고에 보관하던 돼 왔다. 합동참모본부는 이 장비를 보관하고 있다 이번에 다시 설치했다. 최전방 지역 24곳에 고정식으로 설치돼 있었고 이동식 장비도 16대가 있다.
감사원이 국회 요구에 따라 실시한 ‘대북확성기 전력화 사업 추진 실태’ 특정감사 결과를 보면, 국군심리전단은 2016년 고정형·기동형 확성기 성능을 수립하면서 가청거리 10㎞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방송 내용을 명료하게 인지할 수 있어야 명시했다.
대북 방송 작전지역의 북한군 및 접경지역 주민의 방송 청취 여건과 북한의 확성기 방송 시 우리 군의 방송 효과, 접경지역에서 운용했을 때 예상되는 북한의 직사화기 공격 위협으로부터 생존성 확보, 기존 확성기 가청거리(10㎞) 등을 고려한 조치다.

여기에 확성기 운용 온도는 영하 30도에서 영상 45도 사이로 돼 있다. 해당 온도 범위에서 외부 온도 영향 없이 정상적인 작전이 가능해야 하고, 다양한 온도 특성에서 장비의 운용성이 보장하도록 했다.
그렇지만 국군심리전단이 납품될 대북확성기에 대한 성능 검증에서 주간(오후 3시~3시 30분), 야간(오후 9시~9시 30분), 새벽(오전 6시 30~50분) 등 세 차례 성능 평가를 했을 때 모두 10㎞ 거리에서 방송 청취가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겨울철 추위와 강한 바람, 지형 등의 요인으로 상당수 장비 방송는 5㎞ 정도 밖에 전달되지 않아 북측 철책조차 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국방부 성능 재평가에선 가청거리는 최대 7㎞ 이내로 확인됐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작전요구성능(ROC)에 미달하는 불량품인 대북확성기라는 사실이 확인됐지만 군 당국은 이 사업을 강행해 40대를 모두 납품 받았다.
감사원은 특히 당시 군납비리에 합동참모본부의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지만 지난 6년간 이를 개선하기 위한 후속 조치 없이 납품 비리로 얼룩진 대북확성기를 재사용하도록 지시해 합참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감사원은 감사 보고서에서 “합참은 대북 확성기 성능 평가계획 수립·실시를 국군심리전단에서 수행했고 확성기 성능 재검증도 국방부에서 실시했기 때문에 합참에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확성기 전력사업 추진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사업 진행 현황을 보고받았고 확성기 운용 등 대북 심리전을 총괄하고 있는 기관으로서 책임 있는 답변은 아니다”며 대북확성기 납품 비리에 대한 책임이 합참에 있다고 꼬집었다.
군 한 소식통은 “지난 6년간 합참 지휘부가 계속 바뀌면서 납품비리로 공급 받은 불량 대북확성기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보고되지도 않은 것 같다”며 “현재 가동 중인 대북확성기에 대한 ROC 충족 여부와 전술적 운용 성과가 어떻게 되는지 다시 검증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