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세계 농업은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자율주행 트랙터, 위성 기반 정밀농업, 전동 농기계, 인공지능(AI) 기반 병해충 예측시스템까지 농업은 그 어느 산업보다 빠르게 디지털 혁신을 수용하고 있다. 농기계는 더이상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이젠 데이터를 생산하고 활용하며, 농업경영의 뇌 역할을 수행하는 스마트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농업과 농기계산업은 이 흐름과 여전히 동떨어져 있다. 기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장에 적용할 제도와 시장, 인력 구조가 부족하다. 트랙터에 자율주행 장치를 붙였다고 해서 곧 스마트농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 농기계 기업은 여전히 하드웨어 중심의 ‘기계 제조업’에 머물러 있어 글로벌 기업들이 농기계를 ‘데이터 수집기이자 AI 학습 단말기’로 보는 시각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기술 격차는 하루아침에 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대응하지 않으면 그 격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자율주행 트랙터는 이제 개념이 아니라 현실이 됐고, 농기계 기업은 소프트웨어 회사와의 경쟁에 직면해 있다. 데이터 플랫폼을 선점한 기업만이 미래농업의 표준을 만들 수 있다. 농기계시장은 한정돼 있지만, 농업 데이터시장은 무한하다. 지금 한국이 놓치고 있는 것은 단순한 기계 기술이 아니라 농업의 디지털 주도권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존디어(John Deere)다. 이 회사는 완전 자율주행 트랙터를 상용화했을 뿐 아니라, 농기계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클라우드 기반의 ‘운영센터’로 통합해 작물 성장, 토양 상태, 병해충 위험 등을 분석한다. AI로 잡초만 골라 약제를 살포하는 ‘정밀 제초’ 기술까지 실현하면서, 단순히 기계를 파는 기업이 아니라 디지털 농업의 솔루션 제공자로 변신했다.
일본의 구보다(Kubota)는 농업의 고령화와 인력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디지털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자율주행 트랙터와 무인 이앙기를 상용화했으며, 자체 개발한 구보다스마트농업시스템(KSAS)을 통해 농기계와 데이터를 연동하고 있다. 특히 독일 바이엘(Bayer)의 디지털 농업 플랫폼 자르비오(Xarvio)와 통합해 생육 상태, 병해충 발생, 살포 시점 등을 분석하고, 작물 단위의 정밀한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첫째, 한국 농업이 디지털 농기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소농 중심의 농업구조에서 벗어나, 디지털 기술이 효율을 발휘할 수 있는 중대형 경영체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농기계 하나가 아니라 ‘농기계+데이터+경영체제’의 결합이 돼야 혁신이 작동한다.
둘째, 농기계산업을 수출 전략 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국내 수요만 바라보는 구조로는 기술 투자를 지속할 수 없다. 세계엔 지금 농기계화 초기 단계인 국가들이 수십 개국 있다. 특히 동남아·아프리카·남미 등지에선 엔트리급 자율기계와 클라우드 기반 농업 지원시스템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 한국이 자율주행차·로봇·전자부품 기술에서 보유한 역량을 농기계에 접목시켜 ‘디지털 농기계’ 분야의 글로벌 선도국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단, 지금 움직여야 한다.
한국 농업은 지금 ‘디지털 혁명’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서 있다. 이 파도에 올라타지 못한다면 우리는 경쟁력을 잃고 고립될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한국 농기계산업은 전세계의 농업현장을 바꾸는 주체로 떠오를 수도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