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전 무안 제주항공 참사 사망자 179명 중 141명(오전 8시 35분 기준)의 신원 확인은 완료됐지만, 유족 대부분은 시신을 찾지 못한 채 허공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임신 2주차 축하여행을 갔다가 변을 당한 고모(42)씨의 유족도 허망한 표정으로 공항 2층 대기석에 앉아있었다.
“임신 2주차, 축하 겸 친구 5명과 우정 여행”
고씨 여동생(40대)은 “언니가 친구 5명과 한 여행사에서 예약한 상품으로 태국에 다녀오던 길이였다”고 했다. 중·고등학교 친구들과 우정 여행을 가기 위해 돈을 모으고 예약까지 다 해둔 상태에서 임신 소식을 들었다는 것이다. “이미 예약을 다 해놓은 데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갈 수 없어서 간 것 같다”며 “기쁜 소식을 듣고 겸사겸사 축하하는 의미로 모였다고 했는데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고씨가 방콕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 보낸 메시지가 마지막 대화가 됐다. 비행기에서 볼 영화를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동생은 “토요일 저녁쯤 귀국하는 길에 영화를 보고 싶다고 해서 여러 개를 보내주며 선택하라고 했다”며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고씨의 남편도 “여행 가기 전 잘 갔다 오라고 한 게 마지막으로 나눈 말이었다”며 고개를 떨궜다.
고씨와 함께 여행을 떠난 정모(41)씨 유족도 연신 눈물을 흘렸다. 시어머니 문모(68)씨는 “지난달에 며느리가 직접 수육이랑 음식을 차려 집에 초대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며 “너무 착하고 그렇게 효부일 수가 없었는데 지금도 사망했다는 게 상상조차 안 된다”고 흐느꼈다. 정씨에게는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을 둔 자식도 있었다. 문씨는 “8살 아기가 아직도 사고 소식을 모르고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유가족은 12시간 가까이 시신 확인이 되고 있지 않은 상태에 대해서도 분통을 터뜨렸다. 고씨 친언니는 “어제(29일) 밤 11시쯤에 신원 확인이 됐는데 새벽 4시에도 ‘양해를 부탁드린다’고만 하고 지금까지 아무것도 이뤄진 게 없다”고 말했다. 이어 “어제는 유가족 세 명까지 시신 확인을 해준다고 했다가 오늘은 한 명만 확인 가능하다고 한다. (유가족) 누구는 보고 누구는 안 보는 게 말이 되냐”고 토로했다.
언론인 부부도 참변…유족 시신 확인 안 돼 발만 동동
결혼 1년 6개월된 젊은 언론인 부부도 포상휴가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참변을 당했다. 광주 한 언론사 기자 김모(30)씨와 목포 소재 언론사 PD 남편 안모(33)씨다. 공항에서 만난 김씨 아버지(61)씨는 “딸이 최근 5·18 재단에서 올해의 기자상을 받고 포상 휴가를 떠났다가 오는 길이었다. 사위는 전에 태국에서 다문화를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든 경험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우리는 가족 카카오톡 방에서 자주 연락하는데 (사고 당일) 새벽 3시에 방콕 공항에서 사진도 찍어 보냈다”며 “이후 비행기가 연착돼 30∼40분 뒤면 출발할 것 같다고 했는데 도착할 때가 됐는데도 연락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 유족도 시신 확인을 기다리라는 말만 들은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아버지 김씨는 “현장 가서 얼굴 확인하고 온 유족은 80명 정도인데 우리는 아직 대기 번호가 132번이다. 어제도 확인하는 줄 알고 버스를 탔는데 차에서 40분이나 기다렸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1시 기준 사망자 38명의 신원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희생자 신원 확인 뒤 검안·검시 절차가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족들은 검안의 등 인력을 더 충원해달라고 요구했다. 유가족 협의회 대표는 모든 시신의 신원이 확인될 때까지 장례 절차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