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신문 김영길 기자]
전체적 불경기 속 럼피스킨 백신 '신수요 활짝'
ASF백신 '안전성에 발목'...구제역백신 '유전자재조합 주목'
한해 동물약품 시장 최대변수 중 하나는 질병이다.
질병 발생·확산 여부에 따라 해당 동물약품 시장이 활성화되기도 움츠러들기도 한다.
지난해(2023년) 하반기 국내 동물약품 시장에서는 없었던 시장이 하나 생겨났다. 바로 럼피스킨 백신 시장이다.
지난해 10월 럼피스킨이 국내에 첫 발생, 방역당국에서는 럼피스킨 백신 긴급공수에 들어갔다. 적지 않은 물량이 수입됐다.
올해(2024년)도 럼피스킨 백신 수요는 이어졌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월 435만두 분량 럼피스킨 백신 구매 입찰을 실시했다. 소 전두수 접종 분량이다. 결과 코미팜이 납품업체로 최종 선정됐다.
하반기에도 50만두 분량 럼피스킨 백신 추가구매 입찰이 진행됐다.
모기, 침파리 등 럼피스킨 매개체를 구제할 수 있는 살충제, 구충제 시장도 활기를 띠었다.
강력한 럼피스킨 방역에도 불구, 럼피스킨은 간헐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터져나왔다. 백신접종 등 보다 꼼꼼한 방역이 요구된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도 올해 내내 짙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올 들어서 10월 기준 9건이나 나왔다
ASF는 지난 2019년 9월 국내 양돈장에 첫 발생했다. 벌써 어언 5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해결책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동물약품 업계 일각에서는 수년전부터 ASF 백신 카드를 꺼내들고, 개발에 나서고 있다.
BSL3 실험실 등에서 이미 상당부분 효능·안전성을 검증해냈다. 해외 임상실험 계획도 내놨다.
해당 업체들은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며 ASF 백신에 대한 신속 품목허가를 방역당국에 강력 주문했다. 그 과정에서 미끼백신 활용 방안이 강구되기도 했다.
하지만 당국 판단은 달랐다.
당국에서는 100%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ASF 백신 품목허가를 내주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양측이 팽팽히 맞섰다.
결국 이렇게 ASF 백신 개발은 별 소득없이 한해를 흘려보냈다.
그나마 다행히 의무 백신접종을 하고 있는 구제역(FMD)은 올해 나오지 않았다. 지난해 5월 이후 추가발생이 없다.
하지만 구제역백신 주도권 시장 경쟁은 여전히 치열했다.
물밑에서는 기존 불활화 백신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즉, 경제적이면서도 이상반응이 적고 높은 효과를 갖는 유전자재조합 백신 개발이 속도를 냈다.
PED백신, 현 유행주 G2b 주도권
PRRS백신, 자돈영토로 확대시도
올초를 돌이켜보면 PED를 빼놓을 수 없다.
겨울철마다 매년 반복되는 PED이지만 올초는 유난히 PED가 더 활개쳤다.
국가가축방역통합시스템(KAHIS)에 따르면 PED는 올 1월 20건, 2월 35건 발생했다. 전년 1월 10건, 2월 31건 대비 두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미신고를 더할 경우 실제 발생 건수는 10배는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PED는 겨울철 계절질병에서 탈피, 연중 상재질병으로 확산되는 추세도 보였다.
PED 피해는 컸다. 양돈장 뿐 아니라 돼지고기 수급, 가격 등 소비자 경제에도 영향을 끼칠 정도였다.
PED 백신 시장에서는 현 유행주 G2b 백신이 기존 유행주 G1a 백신을 밀어내고, 확실한 주도권을 잡았다.
PRRS 역시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일반 PRRS보다 유산, 폐사 등 더 큰 피해를 일으키는 ‘리니지1’이라는 고병원성 PRRS가 퍼져나갔다.
PRRS 백신은 자돈영역으로 확대를 꾀했다. 피내접종도 한껏 주목받았다.
많은 수의전문가들은 PED와 PRRS를 이대로 놔둬서는 결코 양돈선진국으로 올라설 수 없다며, 정부 차원 종합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돼지열병(CSF)의 경우, 청정화에 한발짝 더 다가섰다.
방역당국에서는 내년부터 야외주와 백신주를 구분할 수 있는 생마커 백신을 전면 도입키로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양돈장은 환영이다. 기존 백신보다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물론, 돼지열병을 떨쳐낼 방안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동물약품 업체들은 돼지열병 백신 교체 준비에 분주했다.
이밖에 써코바이러스질병, 유행성폐렴, 흉막폐렴 등 다양한 생산성저하 질병이 양돈현장을 파고들었다.
GMP 선진화·품목허가 갱신제 추진 '팽팽 대립각'
수출 의료기기 GMP 도입...동약산업 육성법 발의도
올 한해 동물약품 산업계를 뜨겁게 달군 핫이슈는 동물약품 산업 발전대책이다.
농식품부는 그간 동물약품 산업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각종 제도를 싹다 정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올초부터 TF팀을 가동해 정책수립, 의견수렴 등에 나섰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동물약품 산업 발전 대책을 세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체들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야만 충족시킬 수 있는 내용들이 이 대책에 수두룩 담겨있는 까닭이다.
예를 들어 GMP 기준 선진화(상향)다.
그동안 우리나라 동물약품 GMP(KVGMP)는 상대적으로 그 기준이 낮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당국에서는 EU·미국 등 선진국과 조화를 이루는 것은 물론 동남아시아, 중동, 남미 등 주요 수출국 실사에 대응하려고 해도 GMP 기준 선진화는 필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체는 수십억원, 수백억원이 소요될 수 밖에 없는 이 선진화가 영세한 동물약품 업체들을 더욱 옥죄일 것이라고 반박했다.
5년 품목허가 갱신제에서도 부딪혔다.
당국에서는 미생산되고 있는 품목허가를 정리해야 한다며 갱신제 필요성을, 업체에서는 언제든 다시 생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품목허가 계속 유지를 주장했다.
이밖에 △동물용백신 시드로트 시스템 도입 △유통단계 안전관리 책임자 도입 △해외임상시험자료 인정 등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농식품부는 당초 올 연말까지 대책을 마련·발표할 예정이었지만, 내년 상반기로 미뤄졌다.
올 1월에는 수출을 목적으로 하는 동물용의료기기·동물용체외진단의료기기에 대해 업체 자율적으로 GMP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동물용 의약품등 취급규칙’이 시행에 들어가기도 했다.
한병도 의원(더불어민주당, 익산시을)이 지난 7월 1일 ‘동물용의약품 등 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하 동물약품 산업 육성법)’ 제정을 대표발의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통과 여부는 아직 단정지을 수 없다.
한 의원은 동물약품 산업이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동물약품 산업 육성법을 제정해 동물약품 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지원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 내용으로는 종합계획 수립, 전문인력 양성, 관련산업 실태조사, 기술개발 촉진, 해외시장 진출 지원, 동물약품 산업 특구지정 등을 담고 있다.
동물약품 산업 육성법 제정에 대해 동물약품 업계에서는 대체적으로 환영 입장을 밝히면서도 동물약품 산업 특성과 현실에 맞게 관리하려면 결국 ‘(가칭)동물약품 관리법’ 제정에 다시 나서야 한다고 전하고 있다.
동약 수출 소폭 반등 성공...라이신·부스틴·백신 활약
중국시장 개척에 '환호'...대내·외 변수에 능동대응해야
동물약품 수출은 지난해 부진을 딛고, 올해 조금이나마 반등에 성공했다.
올 들어 10월까지 동물약품 수출액(상위 30개사 기준)은 2억2천995만달러로 전년동기 2억1천832만달러보다 5.4% 늘었다.
원료(라이신)는 6천510만달러로 4.2%, 완제는 1억6천485만달러로 5.8% 증가했다.
특히 완제 중 백신 3천217만달러(34.7%↑), 의료기기 4천744만달러(16.8%↑)가 수출 상승세를 이끌었다.
하지만 화학제제와 의약외품은 각각 4천425만달러, 168만달러로 20.6%, 43.4% 하락세를 걸었다.
업계는 그간 시장개척 노력, 예를 들어 중국 품목허가 등록, 갱신 등이 서서히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등으로 확 꺾였던 베트남 등 주요 수출국 축산업 경기가 다소 회복되고 있는 것이 수출실적 개선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다만, 화학제제의 경우 개도국 외화반출 규제 심화, 홍해사태 장기화, 물류비용 증가 등으로 인해 여전히 고전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신규 수출 시장 개척 활동도 왕성했다.
동물약품 수출 시장개척단은 지난 9월 30일~10월 6일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 수출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바이어 등에게 한국산 동물약품 우수성을 알렸다.
중앙백신연구소 백신 첫 수출, 한국엘랑코동물약품 화학제제 첫 등록 등 중국시장 개척도 올 한해 큰 수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다사다난. 2024년에도 많은 사건사고가 동물약품 산업계를 덮쳤다. 전체적으로 시장상황이 좋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동물약품 업체들은 늘 위기를 새로운 성장 발판으로 삼아왔다.
내년(2025년) 역시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명언이 있다. 시장흐름에 능동대응해야 한다.
질병발생, 축산업 경기, 날씨 등 대내 변수는 물론, 환율, 원료가격 등 대외 변수도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새해 더 성장하는 동물약품 산업을 기대해 본다.
축산신문, CHUKSAN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