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의 소명, 제대로 된 연금개혁을 위하여

2025-02-13

책장을 정리하다가 막스 베버의 저서 <직업(소명)으로서의 정치>를 발견하고 뒤적였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던 중 의식의 흐름은 학자로서의 소명에 이르렀고, 곧이어 요즘 내 분야 핫 이슈인 연금개혁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명색이 연금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이 와중에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고민을 하게 됐다.

민주당은 2월 내에 모수개혁을 끝내자고 나섰고 여당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언론도 그동안 오래 끌었으니 이제 빨리 마무리하라고 요구한다. 일단 모수개혁이라도 결론짓자고 나선 것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불완전한 미완성이라서 여기서 그치면 안 된다는 것도 분명하다. 명색이 직업윤리에 투철한 학자라면 이참에 ‘모수개혁 빨리해라’라고 덩달아 목청 높이기보다는 ‘왜 이게 미완성이며 무엇이 더해져야 하는지’를 차분하게 밝히고 똑똑히 설명하는 것이 마땅하겠다.

틀은 그대로 둔 채 그 안의 숫자만 바꾸는 것이 모수개혁이다. 9%인 보험료율을 13%로 올리고 40%로 예정된 소득대체율을 (42+α)%로 높이는 것이 이번 모수개혁안의 내용이다. 이제 어떤 점이 미진하고 그렇다면 무엇이 추가되어야 하는지를 문답 형식으로 따져보자.

Q.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3%-45%는 적절한가.

A. 연금개혁 논의가 시작된 것은 재정의 지속 가능성 우려 때문이다. 낸 보험료에 비해 너무 많이 받아서 지속 가능하지 않으니 이를 고쳐보자는 것이었다. 40% 소득대체율에서 지속 가능하려면 보험료율이 15% 정도는 되어야 한다. 13%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현행 9%인 보험료율을 15%로 올리는 것은 무리다. 13%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대치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소득대체율을 현행보다 높이면 그만큼 재정은 더 악화한다. 보험료율 올린 효과가 사라진다. 재정 안정 측면에서는 부정적이다. 하지만 그동안 정치권의 논의 과정에서 소득대체율을 높이기로 합의한 만큼 이를 무시하기는 어렵겠다. 다만, 소득대체율 높인 만큼 추가적인 재정 안정 대책이 필요하다.

모수개혁에서 그치면 ‘미완성’

Q. 모수개혁만 해도 괜찮은가. 구조개혁도 해야 하는가.

A. 지금 논의되는 내용만으로는 재정 안정 효과도 미흡하고 노후소득 보장 강화도 부실하다. 그래서 국민연금 자체의 추가 개혁 및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을 포함한 노후소득 보장 체계의 정합성을 높이는 개혁이 필요하다. 모수개혁을 먼저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치면 안 된다. 명칭을 구조개혁이라고 하든 다른 뭐라고 하든, 추가적인 개혁이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

Q. 그럼 우선 재정 안정을 위한 추가 개혁은 뭐가 필요한가.

A. 1200조원이 쌓인 국민연금 적립금은, 현행대로면 2056년쯤 고갈된다. 보험료율 13%에 소득대체율 43%-45%로 바꾸면 고갈 시점이 2060년대 중반으로 9년 정도 연장되기는 한다. 하지만 그 이후 연금을 지급하려면 보험료율은 30% 정도가 되어야 한다. 감당할 수 없다. 우리 인구 구조에서는 기금 적립금이 쌓여서 상당한 운용수익을 내고 이를 급여 재원으로 활용해야만 지속 가능하다. 추가 개혁을 통해 상당 수준의 기금 적립금을 유지할 수 있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 예를 들면 보험료율 인상과 함께 목적세로 재원을 마련해 기금에 투입하는 것이다. 어떤 학자는 아직은 기금이 있으니 이걸 사용하고, 기금 다 쓴 후에 일반재정을 투입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면 기금운용수익을 활용할 수 없어서 훨씬 많은 돈이 든다. 소위 복리의 마법 덕택에 지금 1을 투입하면 30년 뒤 3 이상의 실질 가치를 지닌다. 지금이면 호미로 막을 것을, 나중에는 가래로 막아야 한다. 다른 학자는 일반재정 투입은 사회보험 운영 원리에 맞지 않는다고 반대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보험료를 충분히 올리기 어려우니 차선책을 쓰자는 것이다. 보험료 인상을 제한하면서 일반재정 투입도 막으면 무슨 수로 재정 안정을 달성하겠는가.

가입기간 늘려 급여액 늘려야

Q. 노후소득 보장 강화를 위한 추가 개혁은 뭐가 필요한가.

A. 우선 연금 급여액을 높이는 방안으로 획기적인 가입기간 확대 정책이 필요하다. 연금 급여액은 가입기간에 비례한다. 우리는 수급자 가입기간 평균이 20년도 채 안 되는데 다른 나라는 35년 이상이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다른 나라만큼만 되어도 급여액은 1.7배 이상이 된다. 가입기간 확대는 소득대체율 상향보다 급여액을 올릴 여지가 많아서 더욱 효과적이다. 늘어난 기간 동안 보험료가 들어오니 훨씬 효율적이다.

가입기간 확대로 급여액이 높아져도, 그것만으로 여유 있는 노후 생활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이 중요하다. 기초연금은 저소득층, 퇴직연금은 중산층 이상을 위한 소득보충 수단이다. 기초연금 얘기는 많이 나왔으니 퇴직연금 얘기를 하자.

강제 가입 퇴직연금 제도를 지니면서 퇴직연금이 연금 구실 못하는 나라는 적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는 우리밖에 없다. 가장 큰 이유는 퇴직연금 수익률이 낮기 때문이다. 퇴직연금 수익률은 국민연금 수익률의 3분의 1 수준이다. 수익률이 낮으니 퇴직 시점까지 쌓인 적립금이 적고, 적립금이 적으니 연금으로 받아봐야 액수가 보잘것없다. 퇴직연금 보험료율은 8.33%이다. 적지 않다. 그래서 수익률이 국민연금만큼만 되어도 그에 상응하는 소득대체율은 20%보다 훨씬 높아진다. 하려고만 하면 공공인 국민연금공단이 내는 수익률을 민간 금융기관이 못 낼 리 없다(참고로 해외 유수의 퇴직연금 운용기관 수익률은 국민연금보다 높은데, 이게 정상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게 제도가 설계된 탓에 안 할 뿐이다. 퇴직연금 운용기관이, 적어도 국민연금만큼의 수익률을 내도록 제도를 바꾸는 것이 꼭 필요하다.

막스 베버는 정치인에게 신념과 함께 책임윤리를 요구하면서 정치의 소명은 ‘열정과 균형 감각을 갖고 두꺼운 널빤지를 강하게, 서서히 뚫는 것’이라고 했다. 학자는 학자로서, 정치인은 정치인으로서 각자의 소명을 충실히 수행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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