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월 4일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는 금융감독원, 한국은행과 공동으로 작성한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는 전국 약 2만가구를 대상으로 가계의 자산, 부채, 소득, 지출 등을 심층 분석해 가계의 재무 건전성과 경제적 생활 수준을 진단하는 중요한 통계다.
이번에 발표된 조사 결과에는 분배 지표도 여럿 포함됐다. 시장소득, 처분가능소득, 순자산 등 세 가지 지니계수와 5분위 배율, 상대적 빈곤율이다. 지니계수는 소득 불평등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로서, 계수 값이 0에 가까울수록 완전 균등을, 1에 가까울수록 완전 불균등을 의미한다. 전반적으로 이들 분배 지표는 전년 대비 소폭 상승했으나, 장기적인 추세는 큰 악화 징후를 보이지 않았다. 다만 순자산 지니계수는 매우 달랐다.
순자산 지니계수는 0.625를 기록하며, 정부가 통계를 작성한 2012년 이래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순자산 지니계수의 시계열 추이를 보면, 처음 작성된 2012년 0.617에서 2017년 0.584로 지속적으로 개선되다가 그 이후 급격히 상승해 2025년에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순자산은 가계가 보유한 금융자산 및 시장가치로 평가된 실물자산(부동산·자동차 등)에서 부채를 차감한 금액이므로, 부동산 가격 및 증시 활황은 자산 상승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올해 발표된 순자산 지니계수가 역대 최고를 기록한 데는 수도권 일부 지역의 부동산 가격 상승이 크게 기여했다. 자산 통계의 작성 시점이 지난 3월 31일 기준인 점을 감안하면 그 이후 부동산 가격이 더 뛰었으므로 내년에는 순자산 지니계수가 올해보다 더 높게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인의 불평등 인식 상당히 높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과 비교할 때, 지니계수 기준으로 한국의 불평등 정도는 중위권 수준에 위치한다. 폴란드, 체코 등 옛 공산권 국가들과 노르웨이,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불평등 정도가 낮은 수준이며, 미국, 멕시코, 칠레 등 미주 국가들은 불평등 정도가 매우 높은 수준이다. 한국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럽과 미주 국가들 사이에 위치한다.
그런데 수치로 측정된 불평등 정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반인들이 불평등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의 문제다. OECD가 2022년에 27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수행한 불평등 인식조사를 살펴보면, 자국 내 소득 및 자산의 불평등 수준이 높거나 매우 높다고 응답한 비율은 OECD 평균이 소득 61%, 자산 63%였다. 가장 낮은 덴마크(소득 40%·자산 42%)와 가장 높은 포르투갈(소득 82%·자산 81%)에 비해 한국은 소득 73%, 자산 77%로 OECD 평균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불평등에 대한 인식은 정치적 행위를 결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인이다. 자신이 기여한 몫에 비해 소득이 낮다고 인식할 경우 현재의 사회경제 시스템이 불공정하다고 판단하게 된다. 이러한 인식은 기존 체제를 반대하는 쪽으로 투표하거나 정부에 시정을 요구하는 집단행동으로 표출될 수도 있다. 정치적 행위의 배경에는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인식이 강하게 작용하는데, 실험경제학에서 이러한 작용 기제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돼왔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A(좋은 환경)와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B(열악한 환경)의 예시를 상정해보자. A가 B보다 높은 소득과 더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면, 이는 A가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는 외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러한 외적 요인을 간과하고, A가 B보다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높은 소득을 올렸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환경적 요인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높은 소득의 원천을 내재적 능력 차이로 돌리는 경향을 ‘귀인 편향(Attribution Bias)’이라 한다. 즉 결과의 원인을 다른 데서 찾는 것이다.

2004년 출판된 <미국과 유럽의 빈곤 퇴치: 차이의 세계>에서 알레시나와 글레이저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왜 가난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미국인과 유럽인의 인식 차이가 경제정책에 어떻게 다른 영향으로 귀결되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줬다. 미국인들은 가난의 원인을 개인의 내적 요인(게으름)으로 간주하는 반면, 유럽인들은 외부 요인(운)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했다. 두 경제학자는 이러한 인식 차이가 복지 지출과 재분배 정책에 대한 상이한 지지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결과적 운에 의해 발생한 가난에 대해서는 사회적 책임과 재분배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반면, 가난의 원인을 운이 아닌 개인의 능력 부족으로 오인하는 것은 귀인 편향의 한 형태가 된다. 앞이 유럽의 경우이고, 뒤가 미국의 경우이다.
이유 있는 부촌의 우파 성향
귀인 편향과 관련해 노르웨이 경제대학의 알렉산더 카펠렌 교수 연구팀의 최근 실험이 주목된다. 이 연구팀은 스칸디나비아 3국과 미국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운에 따른 불평등과 기회 불평등으로 인한 불평등에 대한 인식을 실험했다. 연구에서 밝혀진 주목할 만한 결과는, 사람들은 운에 따른 불평등은 거부하면서도 기회 불평등으로 인한 불평등은 상당히 수용하는 이중적 태도다. 이 이중성은 귀인 편향으로 설명된다. 실험 결과 대중은 기회의 불평등이라는 외적 요인이 최종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하고, 그 차이를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 등 내적 요인으로 잘못 귀인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 입증됐다. 또한 미국인들이 스칸디나비아인들에 비해,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우파 유권자들이 기회의 불평등으로 인한 불평등을 더 쉽게 수용하는 경향 역시 확인됐다.
실험경제학의 이러한 연구 결과는 부촌(富村)이 정치적으로 왜 우파 경향이 강한지를 설명하는 틀을 제공한다. 부촌과 빈촌에서 태어난 자녀들의 선천적 능력 분포는 균등하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 부촌의 자녀는 사교육 등 우월한 환경적 요인에 힘입어 높은 학업 성취와 성공적인 직장 및 소득을 향유하게 된다. 이때 발생하는 소득의 차이는 선천적 능력의 차이보다는 자라난 환경에 의해 더 영향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환경적 요인을 감안하지 않고 고소득자를 능력도 뛰어나다고 인식하는 것이 귀인 편향 이론의 핵심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은 개인의 능력과 선택을 사회적 책임보다 우선하는 정치적 우파 성향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부촌이 정치적으로 우파 성향이 강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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