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수첩] 고객에게도 “저쪽에 알아보라” 할텐가

2025-01-22

아시아나 미주 본부장 인사

대한-아시아나 자료 제공 거부

“저쪽에 알아보라”며 떠넘겨

통합 앞둔 회사의 핑퐁 치기

고객 서비스도 이렇게 할 건가

“저희는 아는 게 없습니다. 구글링해보니 대한항공 LA지점장을 하셨네요. 대한항공에 연락해 보세요.”(아시아나항공 LA지점)

“그분은 더 이상 우리 직원이 아닙니다. 아시아나 인사지 대한항공이 아닙니다. 아시아나에 요청하세요.”(대한항공 미주 사무소)

아시아나 미주지역 본부장 인사에 대한 취재 문의에 합병을 마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각각 보인 반응이다. 한 마디로 핑퐁이다. 나는 모르니 저쪽에 알아보라는 식이다.

대한항공 상무(강기택) 출신이 미주 본부장으로 부임하는 데 대해 아시아나측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피인수자 입장에선 점령군으로 보일 법하다.

그런데 자기네 사람을 보내는 대한항공의 태도는 의외다. 아시아나 인사이므로 아시아나에 알아보라며, 무슨 공무원처럼 선을 긋다니. 게다가 강 본부장은 대한항공 LA지점에서 두 번이나 근무한 적이 있으니, 모를 리가 없다.

사진을 주지 못하겠다는 이유로는 초상권 문제를 들었다. 인사 홍보자료에 초상권이 무서워 사진을 못 주겠다는 기업은 대한항공이 처음이다. 대한항공은 또 아시아나 본부장 인사에 대한 자료를 제공하면 반독점 재제에 걸린다는 식의 설명도 했다. 이미 합병 수순이 시작됐는데, 본부장 사진 한장으로 제재를 받는다는 말에 누가 수긍하겠나.

어쨌든, 마지막으로 아시아나 LA지점에 한 번 더 전화해 대한항공측 반응을 전하고, 강 본부장 사진을 요청했다. 갑자기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정말 없다니까요”라는 격앙된 목소리가 휴대폰을 통해 퍼져나갔다. 회사 본부장 인사 기사를 자세히 써주겠다는데, 이게 화낼 일인가.

항공사 미주지역 신임 본부장이 LA에 부임하면 한인 언론사들은 인사 기사는 물론 인터뷰까지 곁들여 보도하곤 했다. 한인들이 애용하는 국적 항공사의 현지 책임자에 대한 고객의 관심과 독자들의 알 권리를 반영해서다.

강 본부장은 LA지점 경력이 있기에, 본지 데이터베이스에 얼굴 사진이 있었다. 다만 10년 전의 사진이어서 가장 최근 사진을 넣기 위해 양측에 문의했던 것이다. 양측의 떠넘기기 탓에 항공사 신임 본부장 부임 기사가 최초로 사진 없이 게재됐다.

사소하게 넘길 수도 있는 이 에피소드는 합병 후 두 회사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를 2년간 독립된 자회사로 운영하면서 통합 수순을 순차적으로 밟는다고 발표했다. 두 회사 사이에 본격적인 정보 공유가 이뤄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하지만 정보공유는커녕 신임 본부장 얼굴 사진 한장도 서로에게 떠넘기기 바빴다. 칸막이는 여전히 남의 회사처럼 높았다. 이게 현실이다.

융합이 늦어질수록 불거지는 게 파벌 문제다. 누구는 대한항공 출신, 누구는 아시아나 출신, 하며 인사 때마다 구설이 오갈 가능성이 있다. 공정한 인사에 대한 조직원들의 믿음이 흔들리게 된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합쳐져 탄생한 KB금융에서 직원들이 서로 채널1(국민은행 출신), 채널2(주택은행 출신)로 나눠 호칭했던 사례가 유명하다.

그게 조직의 융합에 무슨 도움이 되겠나. 나아가 고객 서비스에 무슨 기여를 하겠나. 언론사에 인사 자료 하나 줄 수 없다는 꽉 막힌 태도로 고객은 제대로 모실 수 있겠나. 아시아나 고객이 대한항공에 전화하거나, 대한항공 고객이 아시아나에 문의하면 “저쪽에 알아보라”며 퉁명스럽게 끊을 텐가. 가뜩이나 항공권 가격 인상, 불리한 마일리지 통합 등에 대한 소비자들의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직원들의 구조조정 불안감도 무시할 수 없다.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은 양사 통합에 대해 “한 회사에 다른 회사가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드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했다. 물과 기름은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지 못한다. 둥둥 떠다닐 뿐이다. 두 항공사 미주본부가 지금 그렇다.

이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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