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은 암호 전쟁이기도 했다. 독일은 자국의 암호 체계가 난공불락이라고 자신했다. 그럴 만했다. 독일 암호 기기 에니그마를 세팅하는 방식은 1경 가지나 됐다. 그 방식을 공유한 독일군이 암호문을 원문으로 되돌리는 작업은 간단했다. 그러나 모를 경우에는 이론상 불가능했다. 독일은 개전 초 완벽한 보안 속에서 공세를 이어간다.
“아무리 천재적으로 만들어진 암호일지라도, 인간의 천재성으로 해독하지 못할 것은 없다.” 암호를 소재로 넣은 단편을 쓴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 말이다. 에니그마에 대해 이 ‘예언’을 실현한 조직이 영국 정보암호국이고, 중심인물이 앨런 튜링이다. 독일군의 움직임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게 된 영국은 전세를 뒤집기 시작한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도 암호 체계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비트코인의 비밀키는 은행의 비밀번호와 공인인증서 등에 해당한다. 비밀키에서 공개키가 만들어지고, 여러 차례 공개키 변환을 거쳐 주소(계좌번호)가 생성된다. 비밀키를 공개키로 계산하는 데 타원곡선 암호 이론이 쓰인다. 이 방향 계산은 쉽지만, 공개키로부터 비밀키를 찾아내는 역방향 계산은 수퍼컴퓨터에도 거의 무한한 시일을 요구한다.
양자컴퓨터는 가공할 계산력을 자랑한다. 구글은 최근 차세대 양자칩 ‘윌로우’를 탑재한 양자컴퓨터가 기존 수퍼컴퓨터가 10셉틸리언(10의 24제곱) 시간이 걸린 문제를 단 5분에 풀었다고 발표했다. 양자컴퓨터는 비트코인 비밀키를 찾는 데 활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이에 따라 비트코인 가격이 한때 하락했고, 양자컴퓨터 관련주는 국내외에서 급등했다.
과연 양자컴퓨터가 비트코인의 방패를 뚫을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은 상당 기간 낮을 것이라고 분석된다. 여하튼 양자컴퓨터 관련주와 비트코인 가격은 종종 반대 방향으로 등락할 듯하다.
백우진 경제칼럼니스트·글쟁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