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심리하던 2017년 2월16일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여성 정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한 성소수자가 외쳤다. “저는 여성이고 동성애자인데 제 인권을 반으로 자를 수 있습니까?”
문 후보가 개신교단체를 만난 자리에서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한 데 대한 항의였다. 문 후보는 “나중에 말씀드릴 기회를 드리겠다”고 답했고, 그의 지지자들은 한목소리로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를 외쳤다. 문 후보는 석 달 뒤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성소수자 차별금지를 규정한 차별금지법은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21년 12월7일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는 초청 강연을 위해 서울대를 찾았다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3명의 청년과 마주쳤다. 성소수자인 한 청년은 “저의 존재는 사회적으로 합의될 수 없다. 차별금지법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에 사과해달라”고 외쳤다. 이 후보는 청년들을 잠시 지켜보다 한 손을 들며 “다 했죠?”라고 말한 뒤 떠났다. 이듬해 민주당이 발표한 대선 공약집엔 차별금지법이 빠져 있었다.
비상계엄이 해제된 지난 4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사퇴 촉구·탄핵 추진 비상시국대회’에 참석했다. 이 대표가 시국대회 뒤 당원들과 간이 토크쇼를 할 때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는 “윤석열을 탄핵한다고 장애인의 권리가 저절로 보장되지 않는다”고 외쳤다. 이에 이 대표는 “이런 행사 하는 데 와가지고 그렇게 하면 호소력이 있겠어요? 더 미움 받지. 마이크를 드릴 테니까 이야기를 하고 그 다음에 조용히 하세요”라고 말했다. 이후 발언 기회를 얻은 박 대표가 말하던 중 “그만해” “이재명 대통령 만들고 이야기하자” 등의 목소리가 청중 사이에서 나왔다.
지난 14일 탄핵소추안 가결을 앞두고 국회 앞으로 모인 이들은 탄핵만으로 수렴되지 않는 다양한 목소리를 쏟아냈다. 조선소 하청업체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다 해고된 변주현씨(30)는 이날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이 연 사전집회에 참석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미 계엄 시국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윤석열 탄핵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다”며 노조법 2·3조 개정, 배달라이더를 포함한 플랫폼 종사자의 노동자성 인정 등을 꼽았다.
민주당은 이번에도 ‘탄핵 너머’를 상상하는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니 “나중에”라고 할 것인가. 더 이상 “나중에”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