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잖아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될 것이다. 탄핵 심판은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결정하는 재판인데, 위헌·위법한 친위쿠데타를 일으킨 대통령을 파면하지 않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윤 대통령을 파면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친위쿠데타를 일으켜도 된다’고 허용하는 셈이 된다.
그러나 권력자가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다른 헌법기관을 침탈하고 마비시키는 것은 민주공화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소 우여곡절이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윤 대통령은 파면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보수-진보의 문제도 아니다. 최소한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유지하려고 해도, 친위쿠데타를 일으킨 대통령에 대한 파면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단지 윤 대통령을 파면하고 처벌한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온전히 회복된다고 할 순 없다. 더구나 윤 대통령 측이 내란 이후에도 거짓말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등 최악의 모습을 보이면서 국민 사이의 분열과 갈등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따라서 좀 더 큰 차원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과 국가적 통합을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런 논의를 통해 갈등도 치유해 나가야 한다. 정당과 정치인들도 이런 논의를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크게 보면 두 가지 논의가 필요하다.
첫째, 이번 내란을 통해 드러난 국가 시스템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것이다. 지금 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사람들 상당수도 ‘비상계엄은 잘못이다’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시는 이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데에는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하나회’ 등 군대 내부의 사조직을 정리했고,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보면, 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새로운 차원에서 강화해야 한다. 심지어 ‘충암파’ ‘용현파’라는 단어까지 등장한 상황이다.
독일의 경우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군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군인의 인권 보호를 위해 국방 옴부즈맨이라는 기구를 설치했다. 독일의 국방 옴부즈맨은 독일 헌법에 근거를 둔 기구이며, 연방의회에서 비밀투표로 선출한다. 우리도 이런 사례를 참고해서 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근본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경찰도, 정치적 중립성 확보와 민주적 통제를 위해 국가경찰위원회를 설치했지만,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경우에도 국내 정치개입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돼 왔다. 이번 일을 계기로, 경찰과 국가정보원에 대한 민주적 통제 강화방안도 다시 논의돼야 한다.
윤석열 정권 탄생의 일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검찰 개혁도 필요하다. 그동안 검찰은 정치적인 사건을 수사하면서 ‘먼지 털이식 수사’와 ‘봐주기 수사·기소’를 하는 편파적인 검찰권 행사를 해왔다. 검찰을 개혁하되, 이제는 주권자인 시민들이 검찰을 직접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수사·기소 단계에서 무작위 추첨으로 뽑힌 시민들이 참여하는 미국의 기소배심이나 일본의 검찰심사회 같은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
행정부 조직도 전면 개혁해야 한다. 헌법상 보장된 인사제청권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대통령 뒤치다꺼리나 하는 국무총리로는 안 된다. 국무총리가 제대로 된 책임총리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통과의례 역할만 하는 국무회의도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이뿐만 아니라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국민 전체의 민심과 동떨어진 행태를 보이는 정치세력이 존재하기 어렵게 하려면, 선거제도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정 지역의 일당 지배 현상을 타파하고 다양한 정치세력이 경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 1인에게 지나치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는 헌법개정도 필요하다. 이처럼 제도개혁으로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단단하게 해야 한다.
둘째, 민주주의 회복과 함께,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복합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기후 위기, 경제·민생위기, 남북 관계 위기, 지역위기, 저출생 위기 등을 헤쳐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위기를 해결해나가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 지금의 어려운 시기를 넘길 힘과 에너지도 나온다. 민주주의의 회복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 기본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나가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에서도 정치권에서도 활발하게 논의하고, 지혜를 모아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