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역? 일본·중국이 개발한 mRNA 백신, 한국은 걸음마

2024-11-11

〈동북아 꼴찌된 팬데믹 백신 기술〉

“코로나19 치료제 및 백신 개발이 조기에 성공할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범정부지원단을 구성해 이번 주부터 본격 가동한다.”

21대 총선 직전인 2020년 4월 9일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국산 백신 개발의 희망을 불어넣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선거에서 압승했고 코로나19 백신 개발 등에 2100억원을 투자하는 계획이 발표됐다. 그로부터 4년 반이 지난 지금 문 전 대통령의 장담대로 성과가 나왔을까.

지난달 10일 오후 서울 중구 LW컨벤션 센터에선 질병관리청 주관으로 ‘팬데믹 대비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 개발 지원사업’ 기업설명회가 열렸다. 코로나19 백신을 평정한 mRNA 백신 개발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자리다. 정부는 2028년까지 mRNA 국산 백신을 개발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런데 이제야 기업들을 모아놓고 mRNA 백신 비 임상 과제 설명회를 하는 우리 현실은 “백신 주권”을 주장하던 청사진과 괴리가 크다. 우리의 처지는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을 파는 미국뿐 아니라 이웃의 일본·중국과 비교해도 초라하기 짝이 없다.

지난해 8월 일본의 제약사 다이이찌산쿄는 코로나19 mRNA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오쿠자와 히로유키 다이이찌산쿄 사장은 지난달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화이자·모더나에 이어 세 번째로 일본에서 코로나19 mRNA 백신 제조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질병청은 mRNA 백신 기술에 대해 “암 백신, 희귀질환 치료제 등 첨단 고부가가치 시장 개척도 가능하다”고 높게 평가한다. 문제는 이렇게 중요한 분야에서 경쟁국에 밀리는 현실이다.

우리의 팬데믹 대처가 일본에만 뒤진 게 아니다. 중국은 지난해 3월 스야오 그룹이 개발한 mRNA 백신을 긴급 사용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인도네시아 등 외국에서도 중국산 mRNA 백신 사용 승인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6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창업자는 중국의 mRNA 연구 선도기관인 글로벌의약품연구개발센터(GHDDI)에서 연설한 뒤 5년간 5000만 달러(약 635억원)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 2028년 목표 mRNA 백신 개발 지원사업 기업설명회

일본 다이이찌산쿄, 지난해 8월 개발 성공해 백신 제조 승인

중국 월백스도 백신 개발 완료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는 중”

재조합백신 방식 국산은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대량 폐기

중국이 제약 분야에서 무섭게 약진한다는 증언은 곳곳에서 나온다. 이미 국내 제약업체들은 위력을 실감한다. 백신 제조 공장을 취재하는 과정에서도 백신 관련 설비를 정비하는 중국 기술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공장 관계자는 “이 생산 설비는 중국 제품”이라며 “중국에서 기술자가 와야 수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기업들은 일본 제약사의 주문을 받아 납품 형태로 제약 설비 생산을 시작했으나 기술을 빠르게 습득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이 mRNA 개발에 성공하는 동안 우리나라는 무엇을 했을까. 문 전 대통령은 2021년 1월 20일 경북 안동시 SK바이오사이언스를 방문해 국산 백신 개발을 독려했다. 정부의 지원 속에 SK바이오사이언스는 국산 백신 스카이코비원을 개발했다. 그런데 올해 코로나19 백신 접종 품목에서 이 제품은 찾아볼 수가 없다.

스카이코비원의 국내 접종 실적을 확인하기 위해 질병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답변을 받은 결과 지금까지 접종한 실적이 5470회분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2200억원을 투입해 1000만명분을 선 구매했으나 계속 폐기 처분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엔 유효기간이 지난 13만 회분을 폐기했고 올들어42만 회분을 추가로 폐기했다. 대부분을 써보지도 못하고 버린 것이다. 왜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졌을까.

중국 mRNA 백신 해외 수출도

SK바이오사이언스 관계자는 “국산 백신 개발은 큰 의미가 있다”며 “다만 코로나19의 변이가 일어나는 바람에 생산한 백신을 쓰기 어려워진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스카이코비원은 재조합백신이다. 코로나19 백신의 대세가 된 mRNA 백신은 바이러스 변이에 신속하게 대응해 유효한 백신을 생산할 수 있지만, 재조합백신은 기민한 대처가 어렵다. 변이가 계속되는 코로나19의 특성을 고려해 일본이나 중국처럼 mRNA 백신에 총력을 기울여야 했다.

K방역을 홍보했던 지난 정부의 판단력을 의심케 하는 일은 한둘이 아니다. 기모란 전 청와대 방역기획관은 2020년 12월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아스트라제네카와 화이자·모더나 백신을 비교했다. 그는 "만약 3개가 동시에 우리 앞에 놓여있다면 화이자나 모더나를 쓸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연 그랬나. 지난 상반기까지 우리나라의 화이자 접종은 9000만회를 넘어섰지만, 아스트라제네카는 2041만회에 불과하다. 모더나(2832만회) 보다도 적다. 특히 2022년 동절기 추가접종 이후엔 사용 실적이 없다. 바이러스 벡터 백신인 아스트라제네카가 mRNA 백신에 상대가 안 된다는 결과다. 앞을 못 내다보는 전문가가 청와대에 발탁된 셈이다.

문재인 정부서 헛짚은 백신 플랫폼

정부는 뒤늦게나마 mRNA 백신 개발에 진력한다. 코로나19 사태는 일단락됐어도 다음 팬데믹이 닥칠 때 신속히 백신을 개발해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려면 이 기술이 긴요하다는 게 질병청 설명이다. 암과 희귀질환 대처에도 mRNA 기술이 필수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노벨 생리의학상이 mRNA 개발 주역에게 돌아간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 290억원을 신규 편성하고 mRNA 백신 플랫폼 확보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지난 정부 백신 사업 관계자는 “우리의 mRNA 기술이 상당한 수준이고 코로나19 백신 개발 연구를 통해 많은 진전을 이룬 만큼 지속해서 투자하면 성과를 내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 일부 제약사도 mRNA 백신 임상을 진행해왔다. 큐라티스와 에스티팜은 1상을 진행했고 아이진은 1상과 2상을 시험했다. 정부는 그동안 코로나19 백신 임상 지원에 2500억원 넘는 예산을 투입했다.

한국 업체도 mRNA 1·2상 시험

mRNA 백신 개발 환경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 4일 오전 10시쯤 제주시에 있는 한국비엠아이 공장을 찾아갔다. 2상에 들어간 아이진의 시험용 백신을 만든 생산라인이다. 백신 설비 참관을 위해선 방역복을 입어야 했다. mRNA 원료를 섞는 과정과 이를 작은 병에 담아 시험용 백신을 만드는 현장은 방역복을 입고도 진입이 불가해 유리창 너머로 봐야 했다. 이렇게 만든 시험용 백신을 쥐와 원숭이에게 주사하는 비 임상 시험을 거쳤으며 사람을 대상으로 한 1, 2상 시험은 호주 등지로 백신을 보내 진행했다고 한다. 공장 관계자는 “3상까지 성공하면 여기서도 양산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2상과 3상을 모두 마치고 제품화하려면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오랜 기간이 소요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젠 더 늦으면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비 임상부터 최종 제품 개발을 목표로 제대로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질병청은 제품 개발까지 5300억원 정도를 투입할 계획이다. mRNA의 효용이 부각되면서 대형 제약사들도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mRNA 백신 개발에 뛰어들 것으로 보이며 녹십자와 에스티팜·한국비엠아이 등도 참여가 예상된다. 아이진은 RNA 전문가인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 권선종 전 교수를 연구소장으로 영입했다.

질병청 이정민 감염병연구기획총괄과장은 “그동안 임상 등을 통해 mRNA의 요소 기술을 개발한 만큼 이번에 제품화를 목표로 비 임상시험 4개 과제부터 지원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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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백신 발전 속도 무서울 정도”

지난 정부에서부터 신·변종감염병 mRNA백신사업단장을 맡았던 홍기종(가천대 교수·사진) 한국형 ARPA-H 프로젝트추진단 PM은 “우리나라의 백신 기술이 뛰어나고 지난 2년간 mRNA 연구도 축적됐다”고 말했다.

-지난 정부서 운영해온 백신 관련 사업단이 현 정부 들어 중단됐다. 영향이 없을까.

“추진단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동안의 성과를 질병관리청에서 이어받아서 할 것이다. 거기에 의견도 주고 참여한다. 에스티팜과 아이진 등이 mRNA 임상도 진행하며 경험을 쌓았다.”

-일본이 벌써 mRNA 백신을 개발했다.

“최근 십여 년 동안 일본이 감염병이나 백신 등에서 우리보다 못하진 않지만 엄청나게 뛰어나다는 생각은 안 했다. 우리가 많이 따라잡거나 더 잘하는 것도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차이가 나타났다. 알아보니 다이이찌산쿄 등 mRNA 개발에 들어간 돈이 1조6000억원 이상이더라. 우리는 500억원 정도였다.”

-중국의 mRNA 백신 개발은 어떻게 평가하나.

“월백스 백신을 보면 중국이 무섭다는 얘기는 해야 할 것 같다. 사실 중국은 개발 과정 등이 분석이 잘 안 된다. 메르스 이후에도 중국의 바이오 제품은 그다지 뛰어난 느낌이 아니었는데 엄청나게 빨리 발전하고 있다. 과연 언제까지 미국이나 일본, 유럽에 밀릴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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