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케로로부터 “역사학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들은 그리스의 헤로도토스(기원전 484?~425?·사진)는 아마도 지리학자이며 탐험가이며 여행가였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도보와 나귀와 낙타를 타고 그 먼 길 없는 길로 어찌 다녔을까? 후학들에게 “당신은 거기에 가 보았느냐?”고 묻는 것을 보면, 그의 역사는 또한 실증주의였을 것이다.
헤로도토스가 중동의 리디아라는 나라를 찾아갔다. 그런데 그곳은 희한하게도 모계 사회로 일처다부제였다. 일부다처제에서는 양친이 확실하지만, 일처다부제에서는 아버지가 확실하지 않다. 그럴 때 아버지를 어떻게 결정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살펴보니 아이가 종종걸음을 칠 무렵이 되면 엄마는 남편들을 앞에 세워 놓고 아이의 등을 밀어 그가 가서 품에 안기는 남자를 아버지로 결정했다.

그는 이것이 매우 과학적이고 인간적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남자, 자기를 가장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갔기 때문이다. 부모 자식에게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헤로도토스는 묻는다.
자식은 핏줄이라고? 아니다. 보이지 않는 자식은 곁에 있는 이웃만도 못하다. 양자가 효도하는 가정도 많다. 부양하기로 약속하고 상속받은 다음 부모를 돌보지 않아 반환 소송을 하고, 계약서가 없다는 이유로 판사는 부모에게 패소 판결을 했다. 그 부모도 지혜롭지 않았고, 자식은 인면수심이었으며, 판사도 법리는 알지만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아니다.
이제 부모 자식 사이에 약속할 때마다 계약서 쓰고, 도장 찍고, 내용증명 보내는 세상이 되었다. 이 삭막한 삶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 냄새나는 인정이지 혈육이 아니다. 서양 속담에 따르면,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떠난다(Out of sight, out of mind).” 그러므로 자주 찾아뵙고 전화라도 하는 것이 효도이다. 지금….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