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민간인 사찰 행태가 충격적이다. 사찰 표적이 된 시민은 물론이고 가족과 지인들의 사생활까지 탈탈 털었다. 국정원의 행태는 한 편의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한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국정원 요원 4~5명이 지난해 3월 팀을 짜 사찰 대상인 주모씨가 지인들을 만나는 장면은 물론이고, 병원에 가고 운동하는 모습까지 사진을 찍어 상부에 보고했다. 사찰팀의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는 주씨 딸이 다니는 학원의 운영시간과 수강료, 학원장의 이름과 이력 등도 조사돼 공유됐다. 주씨는 대학 재학 시절 학생운동을 했지만 현재 평범한 가정주부라고 한다.
12·3 비상계엄 당시 체포 명단에 올랐던 김민웅씨(촛불행동 대표)도 국정원의 사찰 대상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원은 김씨의 입출국 정보와 동선을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화장실까지 몰래 따라가기도 했다. 사찰팀의 카카오톡 대화방(2024년 1월17일 오후 3시7분)엔 “김민웅 ○○○(카페) 화장실 갔습니다ㅋ” “찾고 있었는데 그리로 갔구나” 등등의 글이 올라왔고, 곧바로 ‘촛불대행진’ 집회 장소로 향하는 김씨 사진과 발언 등이 공유됐다.
국정원은 자체 승인을 거쳤으므로 주씨와 김씨에 대한 사찰이 적법 업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죄와 관련되고 반국가단체와 연계되거나 연계가 의심되는 안보침해 행위에 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는 국정원법 4조 규정을 근거로 들고 있다. ‘반국가단체와 연계됐다는 의심’을 하는 주체가 국정원이니, 국정원이 결정하면 누구든 감시하고 사찰할 수 있다는 논리다. 국정원의 자체 판단으로 국민의 사생활과 비밀의 자유를 해치고,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사실상 제한 없이 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국민 혈세인 국정원 예산이 이런 식으로 쓰이는 것도 용납하기 어렵다.
지난해 1월 개정·발효된 국정원법에 따라 국정원은 기본적으로 대공 수사와 국내 정보 수집 활동을 할 수 없다. 북한과 연계됐다는 막연한 의심만으로 이뤄지는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를 감시하고 옭아매는 도구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 국정원은 주씨와 김씨 등에 사과하고, 국회는 법 개정과 규정 정비로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에 감시·감독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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