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도권 신도시에 사는 68세 A 씨는 늦은 아침밥을 먹고 나면 어김없이 지하철 3호선에 몸을 싣는다. 과거의 노인들이라면 대개 탑골공원이 있는 서울 종로 일대로 향했을 터이지만 A 씨의 행선지는 강남권이다. 환승역인 교대역·고속터미널역에서 친구들과 만나 강남·선릉·사당역 등으로 이동해 식사하고 차를 마신 뒤 귀가한다. 그는 법적 노인 기준인 65세를 넘어섰지만 스스로는 ‘100세 시대 중년’이라 여긴다. A 씨처럼 근래 고령층에 진입한 세대는 육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해 노인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탑골공원 대신 젊은 인구가 많은 거리로 나선다.
‘실버 세대 핫플레이스’의 대이동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서울시 공공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8월 서울 지하철 무임 하차역 순위는 종로3가가 42만 2075명으로 1위였지만 고속터미널(40만 48명)과 잠실(30만 8835명)이 2위와 3위를 차지하며 달라진 세태를 보여줬다. 강남권보다 먼저 2010년대에 뜬 실버 핫플은 동대문 제기동·청량리 등이었다. 탑골공원 일대가 건국 세대의 사교장이었다면 제기동과 청량리는 산업화 세대의 모임 성지다. 복고풍 재래시장, 콜라텍을 구비한 동대문 일대는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소비 여력이 넉넉해진 산업화 세대들을 만족시킬 최적지였다.
강남권 등을 실버 핫플로 개척한 세대는 베이비부머다. 이들은 국민연금·퇴직연금 덕에 한층 더 경제 여력을 가졌다. 고교 진학률 70% 안팎인 세대여서 자아의식이 강하고, 정보 수용성이 높아 유튜브·카카오톡 등으로 맛집, 유행 정보를 공유하며 강남권으로 활동 무대를 넓혔다. 실버 핫플 변천사는 연령·학력·소득별로 양극화되는 노인들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앞으로 X세대가 고령층에 편입되면 실버 핫플은 온라인 영역으로까지 진출할지도 모른다. 이 같은 다변화로 고령층·초고령층을 정밀 분석한 맞춤형 복지·일자리 정책이 요구된다. 노인 기준 연령 상향 조정, 정년 폐지·고용 연장, 연금제도 보완 등 보다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