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한국 경제성장률이 1.7% 이하로 떨어질 수 있으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내년 설 전후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다.
서울경제신문이 19일 경제학자와 시장 전문가 15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을 벌인 결과 응답자의 80%(12명)는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1.7% 이하로 제시했다. 한국은행의 예상인 1.9%를 고른 이는 1명에 불과했고 2% 이상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을 예측한 전문가는 한 명도 없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탄핵을 비롯한 정치 리스크가 존재하는 가운데 중국의 불경기와 덤핑 판매도 걱정”이라며 “한은의 생각보다 성장률이 더 떨어져 내년에 1.7~1.8% 정도를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지금의 상황은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글로벌 무역·통상 환경 변화, 중국의 경기 둔화 등이 겹친 복합 위기라는 점에서 리스크 요인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다음 달 20일 미국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외 리스크 확대와 환경 급변이 예상되는데 이에 대응해야 할 정부는 부재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내년 초 추경을 포함한 확장 재정을 적극 펼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 설문에서 응답자의 80%가 ‘추경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시기로는 내년 설날 전후가 75%로 가장 많았다. 추경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12명 가운데 7명(58.4%)이 ‘설 연휴 전’이라고 했고 2명(16.6%)은 2~3월을 꼽았다.
추경 규모와 관련해서는 최소 10조 원 안팎은 돼야 한다는 이들이 많았다. ‘10조 원 이하(33.3%)’와 ‘20조~30조 원(33.3%)’을 선택한 이들의 숫자가 같았다. 박상현 iM증권 전문위원은 “정치 불확실성과 상관없이 국회 차원에서 빠른 경기 부양책을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남진 원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상공인·자영업자 위주의 핀셋 정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경기 상황이 심각하지만 내년 1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금리를 동결해야 한다는 의견(60%)이 ‘인하해야 한다(40%)’를 앞섰다.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450원을 찍을 정도로 고공비행하고 있고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내년 기준금리 인하 횟수 전망치를 기존의 4회에서 2회로 축소했기 때문이다.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원·달러 환율이 너무 많이 올랐다”며 “미 연준이 매파적인 의견을 내고 있는 만큼 금리 인하 시 환율 불안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한은 부총재를 지낸 이승헌 숭실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1월에 바로 기준금리를 내린다면 3회 연속 금리 인하가 되는데 이는 성급한 결정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경기 상황을 고려하면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환율보다도 정치 불확실성에 따른 내수 불안이 더 걱정된다”며 “재정 정책은 감액 예산안 통과로 인해 신속 대응이 어려운 만큼 통화 완화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최근 씨티는 한은이 1월에 0.25%포인트의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이라고 봤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1월 금통위를 앞둔 한은의 고민이 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의 순대외금융자산이 9월 말 기준 약 1조 달러에 달해 외환위기 가능성이 낮지만 지금 시점에서의 추가적인 금리 인하는 물가 상승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환율 변동성이 지나치게 확대되면 파생금융상품에도 충격이 불가피하다. 한은에 따르면 환율이 1430원 수준으로 유지되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05%포인트가량 오른다. 실제로 골드만삭스는 한은이 연준의 금리 인하 경로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추가로 전문가들은 정치권의 빠른 경제 법안 처리와 정부와의 협업을 주문했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대학 교수는 “정치적 양극화가 지속되고 있고 여야정 협의체 구성은 요원하다”고 언급했다. 석 교수는 “기술적 우위에 있는 반도체와 인공지능(AI) 관련 지원책을 최대한 빨리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